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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age Story/Fantasy Story

살아 움직이는 골렘

by 늘상의 하루 2022. 5. 11.

골렘이라 하면 인간을 닮은 존재보다는 판타지 세계의 로봇이라는 인상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골렘과 로봇은 목적과 기능 면에서 비슷한 면모를 보이고 많은 판타지 컨텐츠 속에서 사람의 일을 대신해주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단순한 짐꾼 역할부터 전투를 수행하기도 하고, 때때로 특정 업무에 고도화되어 트랙터처럼 밭일을 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처음 저는 이 부분이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자신과 닮은 존재를 만들고 그 존재를 통해 또 다른 자신을 투영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골렘 또한 아바타 같은 존재가 될 줄 알았으나 많은 컨텐츠에서 단순한 하수인, 도구, 기계에 준하는 역할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SF에서 로봇에 인간의 마음을 담은 만큼, 판타지 또한 골렘에 인간의 마음을 담아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인간의 마음을 품은 골렘 컨텐츠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금기나 다름없는 미숙한 정신이 피어오르고 성장하는 스토리를 보면, 인간은 피조물을 통해 자신을 투영한다는 생각이 마냥 틀린건 아니었나 봅니다.

 

제가 처음 골렘을 접한 컨텐츠는 게임 디아블로의 네크로맨서였습니다.

 

흙, 쇠, 피 여러 재료를 사용해서 만들어진 골렘은 말없이 플레이어를 따라다니며 적이 보이면 주먹을 휘둘러 공격을 가했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골렘에 대한 기계적인 인상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인식의 변화를 만든 골렘은 나무인간이라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흙거인입니다.

 

전통적인 골렘으로 온몸이 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커다란 덩치에 강한 힘을 지니고 있지만, 순박하고 항상 미소를 지으며 친구들을 배려하는 모습은 제 머릿속에 있었던 기계적인 골렘의 이미지를 벗어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애당초 인간이 신의 창조를 흉내 내어 만든 것이 골렘인데, 우리처럼 웃고 먹고 자고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왜 그렇게 어색했는지 첫인상을 벗어나기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랍비의 카발라 골렘

카발라 유대 전설은 판타지의 교본 중 하나라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신비하고 생소한 이야기들을 가득 품고 있으며 오늘 이야기할 골렘 또한 카발라 전설에서 기인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골렘의 이미지를 파편화하여 놓고 본다면 옛 이야기들 속에서 그 뿌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골렘(Golem. גולם)의 어원 자체는 대상이 이루어진 원초적인 물질, 즉 형질을 의미합니다. 중세 시대까지는 돌이나 진흙 등을 무정형의 물체를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이러한 점에서 여러 물질들을 바탕으로 구성된 판타지 속 골렘의 물질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이라 추측합니다.

 

탈무드에서는 최초의 인간 아담이 처음 만들어진 상태를 골렘이라 표현합니다. 여기서는 골렘을 지식이나 지혜가 없는 존재라는 의미로 사용하였고 이러한 점에서 창조주에게 복종하고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없는 골렘의 정신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진게 아닐까 추측합니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폭주한다는 카발라 골렘의 설정 또한 여기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저는 두 이미지가 뒤섞이고 카발라 전설과 유대교에 대한 환상이 덧붙여져 우리에게 익숙한 판타지 속 골렘이 탄생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신을 흉내 내는 것이 인간의 오만이자 악으로 규정짓는 통상 종교들의 인식과는 달리 탈무드나 카발라에서는 신의 행동을 따라 배우고 모방하는 신성한 행위로 표현된다는 사실입니다.

 

Chayim Bloch의 책 The Golem(1919)에 나오는 랍비 뢰브의 사례에서는 골렘을 만드는 방법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제단에 누운 골렘의 몸을 중심으로 반 시계방향으로 일곱 번, 시계방향으로 일곱 번 걷습니다. 다음으로 신의 이름이 담긴 양피지를 입에 물려 넣은 후, 동 서 남 북으로 절한 뒤 아래와 같은 창세기 2장 7절을 낭송합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여기에 사용된 신의 이름은 셈 하 메포라시(Shem-ha-mephorash)라 부르며 신의 72가지 이름이라 합니다. 이와 수비학적 동일성이 있는 신의 이름 테트라그라마톤(τετραγράμματον)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들은 신의 이름을 적은 양피지는 그 자체로 신성한 힘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랍비가 단식 수행과 의식을 치른 다음, 흙인형의 이마에 진리를 의미하는 Emeth(אֶמֶת)를 써 붙이면 흙인형이 생명을 얻고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골렘이 된다고 합니다.

 

골렘의 작동을 멈출 때는 양피지를 떼어내거나 골렘의 이마에 쓰인 Emeth(אֶמֶת)의 첫 글자 E(אֶ)를 지워 죽음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로 바꿔 골렘을 멈출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가장 큰 유대 분파인 아슈케나짐이 많이 살던 동유럽에서 골렘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프라하의 랍비 유다 뢰브 벤 베잘렐이나 폴란드의 랍비 엘리야후의 수호 골렘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시대적으로 많은 박해를 받아온 유대인들이기에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강인한 흙인형은 자신들을 지켜줄 수호자 이야기에 적격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연금술사들의 골렘

독일의 신학자이자 추대받는 성인이며 과학자이자 철학자이고, 화학자이자 천문학자이며, 음악가이자 곤충학자인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는 그 업적과 시대상 때문인지 많은 신비와 결합된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연금술이 유럽에 전해지고 엘릭서 광풍이 불었던 시기입니다.

 

모든 연금술사와 후원자들이 황금을 만드는 비약 엘릭서를 만들기 위한 물결에 휩쓸리고 있었으며 그의 의도가 어떻든 마그누스 역시 이러한 시대적 열풍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말년에 현자의 돌을 발견하였고 이를 자신의 제자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물려주었다고 하며, 자신의 잡무를 처리하기 위해 30년에 걸쳐 진흙 또는 놋쇠로 골렘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가 만든 골렘은 지능을 갖추고 있어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간단한 수학 문제를 풀 수 있었고 마그누스의 작업을 도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참지 못한 그의 제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골렘을 망치로 부숴버리면서 마그누스의 골렘은 사라지게 됩니다.

 

비슷하지만 다른 방향으로 화학, 약물학, 독성학에 정통한 파라켈수스의 호문쿨루스가 있습니다.

 

호문쿨루스 자체가 작은 사람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하며 그는 인간의 정자는 아주 작은 소인간이며 여성의 몸이 아닌 플라스크에서 사람을 탄생시키고자 여러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어찌 보면 최초의 시험관 아기를 배양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완전한 무지에서 시작되었던 실험이었기 때문에 말똥과 정액을 섞어 한두 달 동안 부패시키는 등의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과정이 올바르게 진행되면 작은 인간의 형상이 남고, 여기에 엘릭서를 뿌려 다시 숙성시키면 살아있는 인간의 형상을 갖추게 된다고 합니다.

 

호문쿨루스는 어찌 보면 생물학적인 골렘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후의 골렘

골렘과 로봇의 유사성은 다른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같은 목적과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신성과 마법으로 이루어지던 메커니즘이 기계장치와 동력부로 바뀌었을 뿐, 사람이 하수인으로 부리기 위해 만들고, 명령에 따라 움직이며, 때때로 주인의 명령을 벗어나 자유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행동하는 옛날 이야기와 지금의 이야기를 보면 둘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스카이림의 드워븐 기계장치나, 리그오브레전드의 블리츠크랭크와 같이 스팀펑크와 결합되어 아케인 펑크, 마도공학이라는 창작물을 통해 골렘의 신성과 마법적인 힘과 로봇의 기계적 구조가 결합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골렘을 만드는 소재가 다양한만큼 기준을 폭넓게 정의한다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또한 생물학적인 골렘으로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모방한 피조물들의 이야기를 따라 살펴보면 그 안에서 또 다른 인간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컨텐츠에서 매력적인 골렘을 만들기 위해 중요한 것은 어떤 재료로 골렘을 만드는지가 아닌 말 그대로 살아가는 골렘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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