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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age Story/Fantasy Story

드래곤 이야기

by 늘상의 하루 2021. 8. 29.

각각의 장르는 빠질 수 없는 아이콘이 있습니다.

 

SF 장르에서는 로봇이, 판타지 장르에서는 드래건이 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판타지에서 등장하는 드래건은 가지각색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악하고 이기적인 악당으로 나오는가 하면 지혜롭고 선량한 주인공의 조력자 역할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다른 모습으로는 속세와 인연을 끊고 황금을 모으며 동굴에 사는 것도 있는가 하면,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모험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거나 방향성을 제시하는 등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에 유용한 소재이기 때문에 판타지 장르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엘더스크롤 : 스카이림에 등장하는 알두인과 파서낙스가 그러한 위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선과 악, 인싸와 아싸 드래건으로 구분 지을 수 있겠네요.-

 

굉장히 오래 산다는 특징으로 지능이 높은 존재로 표현되지만 절제된 모습보다는 보통 충동적인 짐승의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많은 작품에서 욕심이 많고, 이기적이며, 자신의 욕망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이처럼 드래건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쩌다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 그 기원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드래건이 지금의 모습이 된 과정을 살펴볼 생각입니다.

 


 

최초의 문명이라 불리는 수메르(기원전 약 5000~2000) 입니다.

 

수메르 신화를 베이스로 바빌론, 아카드, 아시리아 신화를 통틀어 말하는 메소포타미아 신화를 살펴보면 첫 용에 대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태초의 존재들 중 하나인 티아마트(Tiamat)가 그 주인공입니다.

-실상 티아마트를 검색하면 서브컬처 캐릭터 이미지만 줄줄이 나옵니다. 이름이 익숙하다 싶은 분들은 리그 오브 레전드의 티아맷 아이템 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티아마트는 이름 그 자체에 혼돈과 바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Tiamat가 기독교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창세기의 혼돈(tehom)과 같은 어원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뱀, 파충류 신앙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수많은 뱀들이 얽혀 있는 여성의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거대한 몸집을 지닌 뱀의 몸뚱이에 다리와 날개가 뒤섞인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원시적인 드래건의 모습이 만들어졌습니다.

 

좀 더 살펴보면 바다의 신이기도 한 티아마트는 담수의 신인 압주(Abzu)와 연인 관계이며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많은 신들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물속을 탐험하는 퍼즐 게임 압주의 이름이 메소포타미아의 신 압주에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만 보면 티아마트가 드래건이 되었다는 인과관계가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제 드래건이 왜 드래건이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시간이 흘러 선지자 '예수'가 등장하고 '기독교'가 창시됩니다.

 

당시 기독교는 '우가라트 신화의 바알', '아바돈이 된 아폴론', '정령을 의미하던 데몬'과 같이 다른 종교들을 극단적으로 배척하고 토착신들을 악마화하는 작업을 해 왔습니다.

 

바알의 경우 당시 유대인들이 활동하던 지역에서 가장 강세를 보이던 신앙이었습니다.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황금 송아지 이야기 역시 바알을 의미하는 수소를 숭배하던 신앙이었고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신앙이 바알 신앙과 혼합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습니다.

 

이건 엄밀히 따지자면 꽤 복잡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유일신을 추구하는 지금과는 달리 초창기 기독교는 최고신 야훼를 필두로 다신교적인 성향을 띄고 있었습니다. 유일신 신앙이 확립되고 변화되면서 이들은 다른 신들을 존재하지 않는 허상의 존재로 취급하거나 신이 아닌 존재로 바꿔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성경에는 야훼를 많은 신들중의 으뜸, 최고신이라 칭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또한 이교 신앙에 대한 기록은 있어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악마에 대한 묘사가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악마에 대한 이미지는 약 6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성경에서도 등장하는 특별한 괴물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레비아탄과 베히모스입니다.

-요한 계시록의 묵시록의 용은 제외하겠습니다.-

 

레비아탄은 그 기원이 '우가리트 신화'에 등장하는 머리가 일곱 개 달린 거대한 바다뱀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원어로는 샬리트(Slyt), 똬리를 튼 자, 자기 자신을 둘러싼 자를 의미하며 바알의 주적이었고 , 혹은 로탄(Lotan)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복수의 머리가 달린 뱀 이야기는 우리에게 히드라, 하이드라로 더 익숙합니다. 이들은 메소포타미아의 티아맷, 우가리트의 레비아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사학적으로는 바다에 사는 악어, 고래를 레비아탄으로 표현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으며 현대 히브리어는 고래설을 지지하여 리비아탄(לִוְיָתָן)이 고래를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베헤메스'(בהמות, Beheymes)라 불리는 베히모스는 그 이름의 의미 자체가 '크고 거대한'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의 묘사로는 아주 크고 거대하며 땅과 물을 오가는 생물이라 표현되며 사학적으로는 하마, 코끼리, 코뿔소를 의미하고 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내용을 담은 히브리어 구약 성경이 그리스로 넘어갑니다.


 

그리스 번역가들은 골머리를 썩혔습니다. 히브리인들이 쓰는 단어들, 의미들이 자신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이럴 때면 기존에 쓰던 단어를 붙이거나 새로운 말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문화를 자기들 식으로 바꾸는 당대 그리스의 문화적 특징인 그리스식 해석(interpretatio graeca)은 기독교 신앙을 번역하는 일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중 대표적으로 지옥(Hades, Hell)으로 번역된 스올게헨나가 있습니다.

 

스올은 쉽게 무덤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하데스가 저승, 명계 등으로 표현되곤 했지만 기본적으로 하데스 역시 사람이 죽으면 묻히는 무덤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게헨나는 의미가 좀 다릅니다. 옛 유대인들은 도시 뒤편에 구덩이를 파서 불을 지핀 후 그곳에서 쓰레기를 소각하거나 죄인들의 시체를 던져 넣었습니다.

 

용도를 보면 일종의 소각장을 의미하는 샘입니다. 그러나 그리스에서는 이와 같은 장소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Hell 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스올과 게헨나가 그리스의 타르타로스, 하데스와 동일시되고 모두 지옥으로 번역되면서 죄 짓고 가는 지금의 지옥이 형성되었습니다. 당시 타르타로스와 하데스 역시 무덤의 의미가 강합니다.-

 

다시 드래건으로 돌아와서 그리스인들은 레비아탄과 베히모스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적절한 단어가 있다면 사용하고 없다면 단어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고대 그리스에서는 뱀, 상어, 도마뱀, 악어 등 덩치가 큰 생물들을 뭉뚱그려 부르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이제 베히모스와 레비아탄은 물론 티아메트를 포함한 모든 존재들이 하나의 단어로 번역됩니다.

 

드라콘(Δράκων)입니다.

 

이는 라틴어로 넘어가면서 Draconem이 되었고 이후 기독교에서는 티아마트와 같은 뱀 신앙들을 적대하기 위해 드래건에 사악하고 난폭한 이미지를 덧씌우게 됩니다.


기독교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의 드래건은 입에서 불을 뿜고 난폭하고 사나운 성정을 지니고 있고 동굴 속에 살며 보물을 쌓아 두는 이미지로 고착화되었습니다.

 

이교 신앙에 대한 기독교의 적대적인 시선이 드래건에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가톨릭에서 인기 많은 성인들 중 하나인 '성 게오르기우스'는 직접 드래건의 목을 잘라 죽이고 지역 사람들을 모두 개종시켰다는 이야기도 존재합니다.

-실제로 드래건이 존재할 수 없으니 간단하게 이교 신앙을 몰아내고 지역민들을 개종시킨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기독교의 영향력이 비교적 약했던 슬라브, 루마니아 지역의 토착 종교에서 등장하는 드래건은 우리에게 보다 더 친숙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인간과 같이 암수가 있어 차이가 뚜렷하고 마법을 부릴 수 있으며 인간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어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거나 감정적으로 행동하기도 합니다.

-신들의 모습에 인간을 비춰낸 그리스 신화와 일맥상통하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판타지 속 드래건의 모습에 가깝기도 합니다. 폴리모프 변신과 마법, 감정적인 모습들이 판타지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드래건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선한 존재가 있으면 악한 존재도 있듯이 사악한 드래건도 존재합니다. 즈메이, 즈뮤 등으로 불리며 수많은 머리들이 있으며 머리가 잘려도 계속해서 부활하는 히드라와 비슷한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메소 아메리카에서는 신 자체로 추앙받기도 했습니다.

 

케찰코아틀은 기독교,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인신공양을 받는 끔찍한 악신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메소아메리카의 주신으로서 바람, 금성, 새벽, 상인, 예술, 공예, 지식의 다재다능한 신으로 묘사됩니다.

 

옥수수를 재배하는 법, 시간을 재는 법, 불을 피우는 법과 술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준 신이며 인간이 지켜야 할 예의와 도덕까지 가르친 신이기도 합니다.

 

주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뱀 신앙에서 비롯되었으며 유럽의 신화와 비슷한 내용이 많습니다.

-케찰코아틀은 시팍틀리라 불리는 바다괴물을 죽여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 시체로 땅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록상 악어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바다괴물 이야기는 다양한 종교에서 나타나곤 합니다.-

 

동양에서 드래건은 용(龍)이라 불리며 신성한 존재로 취급받습니다. 용왕이라 불리며 추상적인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힌두에서는 브리트라, 나가와 같이 구체화된 신적 존재로 추앙받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드래건은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티아마트에서 신적 존재로 출발했습니다.

 

2. 기독교의 레비아탄과 베히모스가 그리스로 넘어가면서 드라콘으로 번역되었고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드래건으로 고착화되었습니다.

 

3. 이교를 배척하는 기독교를 통해 사악한 드래건의 이미지가 만들어졌고 기독교의 영향이 적은 슬라브, 루마니아 문화권의 드래건이 결합하여 지금의 이미지가 완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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