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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age Story/Fantasy Story

엘릭서의 기원

by 늘상의 하루 2021. 2. 27.

 

엘릭서는 현대에서 물약을 의미합니다. 어린 시절 먹었던 딸기맛 가루약을 물과 섞어 풀어낸 감기약도 엘릭서에 포함될 수 있고, 속이 더부룩할 때 먹는 활명수 또한 엘릭서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굉장히 융통성 있는 표현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보통 엘릭서, 엘릭시르라 한다면 불로장생의 비약, 만병통치약, 회복 포션 등을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게임을 많이 해서 그럴까요?

 

개인적으로 물약이라는 단어 자체도 약국에서 처방하는 의약품이 아닌, 판타지 창작물에서 활용하는 포션의 느낌이 강한 편이고 일상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러한 엘릭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조사를 하면서 역사 카테고리에 포함해도 무방하다 싶을 정도로 판타지 같은 이야기는 많지 않지만 그 기원과 이야기를 알면 포션이라는 판타지 컨텐츠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를 지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엘릭서의 기원을 따라 올라가면 그리스어로 마른 것을 의미하는 'xerion'이 아라비아로 넘어가면서 '알 익시르(al iksir)'가 되었고 이 단어가 다시 유럽으로 넘어가면서 엘릭서, 엘릭시르(Elxir)가 탄생하게 됩니다.

 

불로장생의 비약, 초 회복 포션 등으로 익숙한 엘릭서의 탄생 배경은 이슬람 연금술의 선구자이자 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자비르 이븐 하이얀(Abu Musa Jabir ibn Hayyan)'의 이야기 속에 있습니다.

 

그는 아랍에서 연금술 연구를 하던 화학자로 생애 2천여 권에 달하는 저서들을 집필했으며 금속을 추출하는 야금술, 초산, 질산, 염화수은, 염화수소산, 적산화물, 암모니아염, 질산 암모니아 등을 발명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하소법과 환원법을 과학적으로 설명했으며 증발, 승화, 용해, 결정화 방법을 진보시켰고 황화비소, 산화아연, 알칼리, 안티목, 알렘빅, 알루델 등의 기반을 쌓아 올렸으며 현대까지도 활용되는 수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특히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소론'과 결합하여 금속이 지닌 성질을 변화시키기 위한 원소를 'al iksir'라 하였는데, 쉽게 말하면 연금술사들의 꿈인 금속을 금으로 전환시키는 비약을 알 악시르라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AL'이라는 단어는 영어의 'The'와 같이 아랍어로 정관사를 의미하며 al가 붙은 단어들을 유심히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연금술을 의미하는 alchemy와 화학을 의미하는 chemistry, 신을 의미하는 일라흐(ilāh)와 결합된 아일라흐와 이슬람의 신 alrha, 아라비아 숫자를 의미하는 algorithm과 화학물인 alkali, alcohol까지 이 외에도 다양한 단어들에 al이 사용되며 이러한 단어들의 기원은 보통 아랍인 경우가 많습니다.

 

연금술 이야기로 돌아와서 유럽은 12세기에 '로버트 오브 체스터'가 완성한 '연금술 구성의 서(The Book of the Composition of Alchemy)'를 통해 이슬람의 연금술이 전해지게 됩니다.

 

이를 기점으로 유럽에서 연금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이슬람의 수많은 연금술 문헌들이 라틴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연금술을 통한 화학의 진보가 중세 유럽의 상징인 풀 플레이트 갑옷을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점입니다. 유럽인들은 아랍에서 수입된 최신 야금술과 금속 제련법으로 효과적인 무기와 갑옷을 탄생시켰습니다. -

 

그리고 13세기, 연금술의 인기에 힘입어 라틴어로 지벨 혹은 게베르(Geber)라 불린 '자비르 이븐 하이얀'의 저서 '비법집대전(The Great Book of Mercy)'이 유럽에 번역되었습니다.

 

아랍 연금술의 정수가 담긴 책을 본 유럽인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 안에는 황금을 만드는 연금술의 궁극적인 목표가 기술되어 있었고 이를 본 유럽인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습니다.

-8~9 세기의 인물인 자비르의 책이 13세기에 제작, 출판된 것을 근거로 해당 서적들은 가짜 자비르가 자비르의 책을 보고 유럽에서 번역한 번역서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연금술사들은 지벨의 연금술이 담긴 서적에서 촉매 '알 악시르'를 사용하면 금속의 성질을 변환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며 그들의 궁극적 목표인 납을 금으로 바꾸기 위해 '알 악시르', 곧 '엘릭서'를 만들고자 도전합니다.

 

이렇게 엘릭서의 개념이 유럽에 등장합니다.

 


 

금은 인류 역사를 가로지르는 불변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는 탐욕을 에너지로 삼아 금을 쟁취하기 위해 온갖 재능을 펼쳐 보였습니다.

 

아랍에서 시작된 연금술은 납을 황금으로 바꾸기 위한 수많은 실험이었으며 전설과 과학이 결합된 이 오묘한 학문은 시간이 흘러 신비와 미신이 하나 둘 소거되며 현대 화학의 토대로 완성되어 갔습니다.

 

그러한 중심에는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와 '로저 베이컨'이 있었습니다.

 

둘은 철학, 과학, 신학에서 수준 높은 역량을 지니고 있었으며 관찰과 실험을 중요시하고 미신을 부정하면서 연금술을 받아들이고 연구함으로 유럽의 화학을 진보시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그누스의 경우 흥미로운 전설도 존재합니다. '도미니코 수도회'의 성직자인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는 연금술을 통해 골렘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가 만든 점토인형은 걷고, 말하고, 간단한 수학 문제를 풀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그누스의 골렘은 지나칠 정도로 말이 많았고 골렘의 수다를 참다못한 그의 제자인 '토마스 아퀴나스'가 골렘을 부셔 버렸다고 합니다.

-이는 차후 골렘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당시에는 과학, 신학, 철학의 경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중세 시기였고 사람들은 쉽게 소문에 휩쓸리고 이야기를 부풀렸습니다.

 

과학 시간때 했던 화학 실습만 떠올려 보더라도 연금술은 현대인의 관점으로도 흥미로운 점들이 많습니다. 당대인들은 오죽했을까요.

 

골방에 틀어박혀 연구에 몰두하는 연금술사들은 당대인의 시각으로 보아 신비롭기 짝이 없었고 수많은 미신들과 결합되었으며 골렘, 호문쿨루스, 엘릭서, 현자의 돌, 불로장생과 같은 이미지를 품게 되었습니다.

-금을 만들거라고!-

 

이러한 이미지는 납을 금으로 바꾸는 엘릭서의 이미지를 영생의 비약으로 서서히 전환시킵니다.

 

그러한 이미지 전환에 앞장선 이들은 영원불멸의 삶을 꿈꾸는 유럽의 권력자, 호사가들과 그들의 후원을 받는 연금술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싸구려 물질을 비싼 금으로 바꾸는 엘릭서가 바로 영생의 해답이라 생각했고 이 과정을 위대한 일이자 학문이라는 의미의 '마그눔 오푸스(Magnum opus)'라 칭했습니다.

 

불로장생의 비약을 찾는 것이 역사적으로 특별한 사건은 아닙니다.

 

고대 중국의 진시황 또한 '불로초'를 찾다가 포기하고 불로장생의 비약으로 취급받은 '수은' 한 수저를 매일 마셨고 그리스 신화에서는 신들이 영원불멸의 힘을 얻기 위해 마시는 '넥타르(Νέκταρ)'라 불린 음료가 존재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금속의 성질을 바꾸는 촉매로 표현되던 엘릭서에 불로장생의 비약이라는 인식이 접목하면서 만병통치, 불로장생의 이미지를 지닌 지금의 엘릭서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는 '현자의 돌(lapis philosophorum)', 혹은 '마법사의 돌'이 있는데 금속을 금으로 바꾸거나 불로장생의 힘을 준다는 엘릭서와 같은 효과를 지닌 전설의 물질입니다.

 

특히 '해리포터' 1편에서 등장하는 마법사의 돌이나 '강철의 연금술사'와 같은 수많은 창작물에서 등장한 전적이 있어 엘릭서보다 인지도가 높은 전설의 돌맹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다.

 


연금술사들이 찾는 엘릭서는 실존하지 않습니다.

 

납을 금으로 바꾸는 연금술 또한 일반적인 화학으로는 이룰 수 없는 꿈이란 것이 밝혀졌고 불로장생의 약 또한 가질 수 없는 환상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연금술사들이 만든 기반은 화학이라는 학문이 되어 인류를 진보시켰고 수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재미있게도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같아서 현대의 인류는 정말로 다른 물질을 금으로 바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자 폭탄을 함께 개발한 미국의 화학자 '글랜 시보그'는 1980년 입자 가속기를 통해 원자 번호 83번 '비스무트'에서 4개의 양성자를 제거하여 79번인 ''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합니다.

 

비록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며 방사능 덩어리인 금이 탄생했지만 수백년이 지난 연금술사들의 꿈이 현대에 이르어 성공하게 된 겁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또 다른 목표인 불로장생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홍해파리, 히드라, 바닷가재와 텔로미어 연구를 통해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물질을 금으로 바꾼 모습을 보면 결국 언젠가는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컨텐츠 요소로 접근하고자 하면 엘릭서나 현자의 돌과 관련된 연금술사들의 생애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 엘릭서의 기원인 '지벨' 혹은 '자비르 이븐 하이얀'
  • 도미니코 수도회의 성직자이자, 연금술사, 철학자, 점성술사, 음악가, 곤충학자, 성인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 88세까지 장수하여 현자의 돌을 만든 연금술사라는 소문을 들은 '니콜라스 플라멜'
  • 수십년이 흐름에도 늙지 않는 전설을 지닌 프랑스의 '생 제르맹 백작'
  • 철학, 점성술, 연금술에 정통하며 4 원소의 정령을 정의한 현대 약학의 아버지인 '필리푸스 파라켈수스'
  • 물리학, 수학, 천문학, 신학, 근대 과학의 선구자이자 뉴턴 역학을 창시한 '아이작 뉴턴'의 '현자의 돌'

이러한 인물들의 생애에서 신비와 과학이 결합된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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