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생존을 위해 진화를 거치며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특이한 속성을 얻었습니다.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을 내버려두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개념이나 현상, 사물과 서로를 대할 때 무의식적으로 패턴을 찾습니다. 패턴을 찾고 대상을 이해하며 그것이 무해하고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는지 가늠합니다.
불확실성은 이러한 패턴화된 접근과 이해를 방해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무해한지 알 수 없으며, 통제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사람에게 크고 작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불러 일으킵니다.
인류가 생존했듯이 두려움은 극복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러한 과정을 반복적으로 접하고 극복하면 우리 뇌는 문제 해결 패턴을 만들어 두려움에 적응하고 성취와 만족감을 보상으로 얻게 됩니다.
-굴복과 회피하는 방식으로 두려움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둠 속에서 불안에 떠는 것도, 어둠 너머에서 존재감을 풍기는 불확실한 존재를 머릿속에 그리는 것도, 그리고 불을 켜서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모두 살아남기 위한 본능의 과정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높은 지능으로 만들어진 상상력이라 불리는 또 다른 속성이 존재합니다.
IF
보통 만약이라고 합니다.
상상력은 특정 상황이나 대상, 생각이나 감각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능력으로 그것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거나 경험한적 없는 것이라도 대상을 직관하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무수히 뻗어나가는 상상력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시작점이 되기도 하지만 때때로 사람의 인지를 침범하여 실존하지 않는 환각과 환청으로 혼란을 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상상력은 무적이 아닙니다. 상상의 힘은 경험과 정보의 단초가 선행됩니다. 우리의 뇌는 정보가 없으면 반응하지 않으며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경험과 지식을 재료 삼아 본능적으로 패턴을 찾기 때문입니다.
-선천적 시각 장애인의 상상은 시각 정보가 누락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후각, 청각, 촉각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있지만 시각적인 상상과 꿈을 꾸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개념과 패턴을 과장하고, 축소하고, 해체하고, 조립하는 무수한 상상을 더해 만약의 가능성을 대비하고 살아남을수 있는 확률을 끌어올렸습니다.
지난밤 늑대들이 습격했습니다. 오늘 밤에도 늑대가 어둠 속에 있을까요?
늑대를 막기 위해 창을 깎아 두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싸운 늑대보다 더 큰 늑대가 오면 막을 수 있을까요?
혹은 내가 본 적 없는 더욱 무시무시한 늑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상상력이 발휘되기 시작합니다. 세 마리의 늑대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머리가 3개 달린 늑대가 그려지기 시작합니다.
그런 늑대들이 들이닥치면 내가 막을 수 있을까요?
이제 우리는 어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상상합니다.
이제 현실을 벗어난 존재가 탄생하기 시작합니다.
상상의 단초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무수한 괴물들을 상상하고 그려냈습니다. 우주를 창조한 거인부터 깊은 심해에 잠든 악마와 침대 아래에 숨어 있는 정체불명의 괴물까지.
인간의 역사를 만든 상상의 단초는 자연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항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으로 인간을 휩쓸어버리는 자연의 위압은 모든 인간을 굴복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한낮의 시간에 태양이 죽은 것처럼 사라지고 하늘에서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구름이 세상을 깔아뭉갤듯 소용돌이치며 빛으로 이루어진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 하늘에서 느껴졌습니다.
무수하게 펼쳐지는 다채로운 자연의 모습들은 한낱 인간이 극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자신의 특성을 백분 활용하여 상상을 시작했습니다. 세상을 휘두르는 존재들을 자신들과 비슷한 존재로 그려내며 그들을 숭배하고 힘을 빌려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기원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샤머니즘, 애니미즘, 토테미즘이라 불리는 원시 신앙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어제 정착지를 습격한 늑대는 굉장히 강했습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 강할까요? 그 힘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의 펄떡거리는 심장? 단단한 뼈와 살? 어쩌면 이빨과 발톱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들의 힘을 빌릴 수 있다면... 내 것으로 할 수 있다면...
과장과 축소, 해체와 조립
고대 수메르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는 존재들을 과장하고 축소하고, 해체하고 조립하여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켰습니다.
수메르의 티아마트(Tiamat)는 신앙이 된 최초의 용으로 유명합니다. 이어지는 우슘갈(Ušumgal)은 거대한 뱀의 모습을 가진 용으로 표현되며 상상력은 끊임없이 새로운 전설을 만들었습니다.
독수리의 뒷다리, 사자의 앞다리, 뱀의 머리와 꼬리, 뿔이 달린 무슈슈슈(Mušḫuššu)는 사나운 뱀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스핑크스와 그리폰은 여러 동물들이 재조립된 괴물로 유명하며 이집트의 태양신 라는 사람의 몸에 매의 머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최초의 용은 뱀의 형상을 지니고 있지만 이 역시 시간이 흐르며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로마 시대까지 용을 표현할 때는 기본적으로 거대한 뱀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3세기에 들어서야 불을 뿜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우리에게 익숙한 용의 모습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변화가 없었던 아즈텍과 동양에서는 여전히 뱀의 형상에 가까운 용이 숭배받았고 현대에 들어서는 공룡 화석이 발굴됨에 따라 20세기 초부터 미디어와 컨텐츠에서 용을 공룡의 모습과 결합하여 묘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위업과 힘의 표현
반면 자신의 위업과 힘을 드높이기 위해 적을 과장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수메르 신화인 길가메시 서사시에 등장하며 길가메시와 엔키두에게 죽은 거인 훔바바는 인류 역사에 기록된 가장 오래된 괴물들 중 하나이며 수많은 괴물들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그 모습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시체의 내장 같은 흉악한 얼굴에 소 뿔이 달렸고, 사자의 앞발과 독수리의 뒷발, 그리고 거시기와 꼬리가 뱀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눈을 마주치면 두려움에 단단히 굳어 움직일 수 없다고 표현됩니다.
-이는 향후 그리스 신화의 고르곤 자매에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폴리페무스도 있습니다. 외눈박이 거인 종족 퀴클롭스중 하나인 폴리페무스는 동굴에 살던 와중 식량을 찾으러 온 오디세우스와 그 부하들을 잡아먹으려 하였고 오디세우스의 꾀에 넘어가 포도주를 먹고 잠든 사이에 하나뿐인 눈을 찔리는 패배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적을 강력한 거인으로 표현하는 이야기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 외눈박이 거인인 퀴클롭스에 대해 재미있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 모습이 되는 모티브가 지중해 코끼리 화석에서 기인한다는 내용입니다. 학계에 인정을 받은 주장은 아니지만 지중해 코끼리의 화석을 보고 퀴클롭스와 연결짓는 상상력 자체는 눈여겨볼만한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집단의 이익
집단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상상도 존재합니다.
항해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 사람들에게 드넓은 바다는 미지와 두려움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리고 물에서 튀어나온 생명체들은 무언가 육지와는 이질적인 생김새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곧 상상의 영역과 결합하여 많은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바다괴물에 대한 이야기는 동양과 서양, 대양을 넘어 아즈텍의 시팍틀리까지 전지구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이러한 전설을 그림과 이야기로 표현된 모습을 보면 어딘가 익숙한 기시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징어와 문어 같기도 하고, 거대한 뱀과 악어 같기도 합니다. 고래의 모습과 비슷하기도 하고 물고기와 무언가가 합성된 모습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어둠 같은 수면 아래를 지나가는 거대한 생명에 대한 경외와 두려움은 괴물의 크기와 이질적인 모습을 강조하는 상상을 불러 일으켰고 심해라는 새로운 영역이 발견된 현대에 와서도 많은 이야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먼 옛날에 이러한 공포를 활용한 집단이 있습니다.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던 페니키아인들은 해상 무역로를 독점하기 위해 무시무시한 바다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세상에 퍼트렸습니다. 바다를 가본 적 없는 내륙인들은 그 이야기를 믿을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이 증거로 보여주는 바다 포식자들의 유해를 보며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내가 자주 가봐서 아는데 이거보다 더 큰게 있다-
시간이 흘러 지중해가 정복되고 소문은 무색하게 사라졌으나 이야기 자체는 남아 아프리카 해협부터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까지 온갖 바다를 넘나들며 가십과 미신으로 구전되었습니다.
본질의 통찰
앞서 이야기했듯 상상은 주어진 정보를 과장하고, 축소하고, 해체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옛 사람들의 상상력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세계화가 이루어지면서 인류의 시야는 획기적으로 넓어졌으며 인터넷의 탄생으로 인류는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의 한계를 뛰어넘은 상태입니다.
인류가 두려워했던 괴물들이 현대에 이르어서는 일종의 문화로 자리잡아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되었고 단순히 재조립을 넘어서 본질을 관찰하고 탐구하며 원초적인 근원을 자극하는 획기적인 것들이 창조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관점의 신화를 만든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우주를 넘나드는 워해머, 새로운 세상을 그리는 톨킨의 이야기와 같은 창작물들이 끊임없이 영감을 뿌리며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또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퀴클롭스의 지중해 코끼리 기원설처럼 기존 대상에 새로운 관점을 더해 재해석하는 시도도 있습니다.
본질과 의도를 통찰하고 과장, 축소, 해체, 조립이라는 과정을 통해 변화를 가해주면 완전히 새로운 느낌의 괴물이 탄생하기 때문에 괴물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제게 가장 충격적인 괴물은 영화 더 씽에 나오는 변신 외계 괴물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며 돌이켜보면 인류가 상상의 존재를 만드는 과정이 때때로 AI와 매우 흡사한 과정을 거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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