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포스팅에서 롱하우스를 찾다가 레이프 에이릭손의 여정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만화가 생각납니다.
일단 각 권마다 표지의 등장인물이 다른데 포스가 만만치 않은 것이 특징입니다.
실존 인물들과 사건을 픽션과 잘 엮어낸 작품인데 묘하게 현실적이면서도 만화적 허용이 허락되는 흥미진진한 전개를 보여준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애니메이션도 완성되어 이쪽이 편한 사람은 애니를 추천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남자는 누구인가?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많은 분들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라 불리는 남자를 떠올리실 겁니다.
신대륙 아메리카를 발견한 모험가로 우리는 '콜럼버스'를 먼저 떠올립니다. '콜럼버스의 달걀'이야기나 그의 배 '산타마리아' 역시 그의 이름만큼이나 유명합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이야기하자면 조금 잘못되었다 말할 수 있습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그는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닌 신항로를 개척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도 각색된 내용이 많습니다. 콜럼버스는 달걀을 거꾸로 세운 적이 없습니다. 그는 동인도를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났으며 공격적으로 원주민들을 제압했습니다.
또한 그가 인도를 찾아 나선 것을 계기로 아메리카 부족들을 인디언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아메리카를 발견했을까요?
물론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이 있지만 그들을 제외하고 유럽인의 관점으로 한번 바라보도록 하겠습니다.
콜럼버스보다 500년은 앞선 옛날 풍요로운 터전을 꿈꾸는 바이킹 사내가 있었습니다. 그는 나무가 많고 생명이 가득한 땅(Vinland)이 서쪽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며 사람을 모아 항해를 시작합니다.
노르웨이 사람인 '레이프 에릭손'의 빈란드를 향한 여정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보다 500년은 앞서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험을 떠나 그가 도착한 곳은 캐나다의 동부 뉴펀들랜드 섬.
그는 토르핀, 바르니 등 35명의 동료들과 함께 북대서양을 따라 신대륙을 향해 항해했고 아이슬란드에서 출발하여 그린란드, 핼룰란드, 마크란드를 거쳐 빈란드에 도달했습니다.
그와 관련된 사료는 '붉은 머리 에리크의 이야기'와 '그린란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으며 사료 속에서 원주민들과 싸우고 교류를 나눈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 페로 제도와 아이슬란드, 그린란드는 척박한 환경으로 인해 농경이 제한적이었고 나무가 매우 귀한 땅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아메리카에서 수입했던 감자도 없던 시절이라 이들은 목축을 하거나 어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고 항상 가난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바이킹들의 서사를 적은 사가(Saga)는 과장되거나 은유적인 표현이 많이 있기 때문에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에릭손의 이야기는 전설 취급을 받으며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캐나다 뉴펀들런드 섬에서 사가에서 등장한 바이킹 유적지가 발견되었고 그저 전설과 이야기로만 취급받았던 '사가'가 역사적인 사료로서 조명받게 됩니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의 발견자로 알고 있습니다.
영향력을 끼친 측면으로 본다면 콜럼버스가 압승이라고 할 수 있지만 상상력을 자극하는 에릭손의 이야기를 아는 것으로 새로운 컨텐츠와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에릭손 탐험대의 여정은 그 후에도 이어집니다.
낙원을 찾았으니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전설보다 더 각박합니다. 이미 그 땅에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고 바이킹과 원주민은 서로 공존하기 좋은 스타일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바이킹들의 야영지는 '스크랠링'이라 불리는 토착 원주민들과 여러 차례 교전을 반복했습니다.
스크랠링은 북아메리카에 살던 이누이트 계열의 '툴레*' 인들을 말했으나 바이킹들이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을 부르는 말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어원은 '야만인' 혹은 '약한'으로 언급되는데 멸칭으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입니다.
- 툴레 인들은 이누이트의 조상이다. -
열병기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양측은 모두 육탄전을 벌여야만 하였고 원정을 온 바이킹들과는 달리 원주민들에게 빈란드는 자신들의 앞마당이었습니다. 보급과 전술적 이해 측면에서도 바이킹들은 밀릴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일들의 반복으로 결국 바이킹들은 빈란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덧붙여 이야기하면 처음 원주민들을 공격한 것은 빈란드 탐사대였다고 합니다. 이후 이들은 수적 열세를 느꼈는지 우호적인 관계로 접근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으나 사소한 시비로 인해 다시금 서로에게 칼을 겨누었다고 합니다.
-트루 바이킹 스타일-
에릭손 탐험대의 이야기는 이걸로 끝입니다.
덧붙여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의 어원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아이슬란드를 이름지을 때는 사람들이 오지 못하게 하려고 Ice를 붙였고 그린란드를 이름지을 때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려고 Green을 붙였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http://www.bbc.com/travel/story/20170629-the-first-european-settlement-in-the-new-world
https://en.wikipedia.org/wiki/Skr%C3%A6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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