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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age Story/History Story

아즈텍과 코르테스

by 늘상의 하루 2021. 1. 22.

아즈텍 문명에 대한 이야기는 쉽게 접하기 어렵습니다.

 

신비스럽고 베일에 가려진 아메리카의 문명이었으며 유럽 침략자인 코르테스의 손에 힘없이 멸망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내용이 그나마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제 경우에는 '문명'이라는 게임을 시작으로 아즈텍에 대해 알게 되었고 다른 게임에서 등장한 '마쿠아후이틀'이라는 흑요석 무기를 통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거대한 둔기이자 날붙이 역할을 하는 마쿠아후이틀을 처음 봤을 때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원시적인 폭력으로 점철된 용도와 디자인이 호기심을 수면 위로 잡아끌었고 이걸 주력으로 사용한 아즈텍 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중남미의 거대한 제국

아즈텍 제국 13세기 ~ 16세기 동안 중남미에 존재했던 원주민들의 거대한 제국입니다.

 

이들은 석기 문명을 유지하면서 경제, 건축, 신앙 등 여러 방면에서 엄청난 문화를 꽃피웠고 수백만에 달하는 인구를 지니고 성장했으며 에르난도 코르테스가 이끄는 400명의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석기 시대를 유지했지만 의외로 고려말부터 조선 초중기까지 유지된 멀지 않은 시대에 존재했던 문명입니다.

 

이들이 세운 제국의 영향력이 너무나 강대하여 처음 역사를 연구하던 이들은 아즈텍이 코르테스 일당에게 멸망했다는 이야기를 쉽사리 믿지 못했고 진실을 알기 위해 많은 가설들을 제안하고 파헤쳤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했던 것은 코르테스를 통한 전염병 멸망설입니다.

 

마땅한 가축이 없었던 아메리카에 유럽인들이 흑사병, 천연두와 같은 질병균을 옮겨 퍼트렸고 수십만에 달하는 인원들이 병사하자 약화된 제국의 결속력을 파고들어 코르테스가 마무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허나 이후 밝혀진 사료와 사실에 따르면 전염병이 아즈텍 멸망에 끼친 영향력은 미미했습니다. 전염병이 본격적으로 아메리카에 활동한 시기는 이미 아즈텍이 무너지고 난 이후였기 때문입니다.

 

본론을 이야기하자면 아즈텍은 에르난도 코르테스분노한 주변 부족들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아메리카 토착 문화권에서 꽤 자주 코르테스가 문명을 파괴한 악랄한 정복자로, 아즈텍 제국은 제국주의에 무너진 안타까운 약소국으로 표현되곤 하지만 딜레마에 빠지지 않고 객관적이고 문화적 차이로 이야기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즈텍 제국을 이야기하면 꼭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식인 풍습'과 '인신 공양'이며 이는 아즈텍 뿐만이 아닌 메소아메리카 전반에 걸쳐 만연한 문화였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아즈텍 제국의 문화와 코르테스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제국의 시작

아즈텍 문명은 중앙아메리카를 유랑하며 유목 생활을 하는 '메시카 부족'이 그 기원입니다. 이들은 유목 민족처럼 대륙을 유랑하며 약탈을 일삼다가 정주 민족으로 변화하면서 '차폴테펙' 언덕에 정착했습니다.

 

다만 그들은 업보 때문에 적이 꽤 많았습니다.

 

정착 생활을 시작하기 무섭게 아즈텍인들에게 당하던 부족들이 연합하여 그들에게 공세를 퍼부었고 아즈텍인들은 정주 민족으로 변화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멸망의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그 때 아즈텍을 눈여겨보던 콜후아족의 지도자 콕스콕스틀리가 아즈텍인들에게 봉신 계약을 제안했습니다.

 

이러한 협력 관계로 아즈텍인들의 생활은 한결 나아지게 됩니다. 힘든 시기에 생긴 강력한 우방에게 감사를 표하고자 했던 아즈텍인들은 콕스콕스틀리의 딸을 태양신 '우이칠로포치틀리'의 현인신으로 삼겠다고 전했습니다.

 

왕은 딸이 좋은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의 요청을 허락했고 시간이 지나 아즈텍에서 콜후아족을 초청합니다. 그리고 왕이 가서 본 것은 딸의 가죽을 뒤집어쓴 사제제사를 올리며 눈앞에서 춤을 추는 모습이었습니다.

 

아즈텍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예우였지만 문화는 상대적입니다. 딸의 가죽을 입고 춤을 추는 사제의 모습에 눈이 돌아버린 왕은 아즈텍 인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쳐 죽이기로 마음먹습니다.

 

아즈텍인들은 적으로 변한 우방과 전투를 벌이며 도망쳤고 다시 한 번 멸망의 위기에 놓입니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텍스코코' 호수 한가운데 있는 섬으로 도망쳤고 콜후아족은 그들이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하고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아즈텍인들은 살아남습니다. 1325년 아즈텍인들은 호수의 중심을 '테노치티틀란'이라 하여 자신들의 새로운 터전으로 삼아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하며 이는 주변 부족들에게 재앙의 시작이 됩니다.


제국을 통치하기 위한 방법

'선인장의 땅'이라는 의미의 '테노치티틀란'은 10~30만의 인구를 지닌 초거대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이들은 서쪽의 담수를 막아 농지를 조성하여 식량을 공급했고 텍스코코, 틀라코판 도시국가와 군사적 목적을 지닌 삼각동맹을 맺습니다.

 

그리고 막강한 군사력으로 판도를 뒤엎어 주변 국가들을 제압하고 조공을 받는 식으로 통치를 시작했으며 범위를 넓혀 수백만에 달하는 제국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유럽이 중세 말기에 도달하고 조선이 건국되기 직전의 시대와는 달리 통치 방법은 고대 제국에 가까웠습니다.

 

아즈텍은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지배국들의 내정에는 간섭하지 않는 원시적인 연합 통치 체계를 갖췄기 때문에 주변국들에 대한 지배력과 결속력이 약한 상태였고 이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앙이라는 방법을 선택하게 됩니다.

 

당시 중앙아메리카 문화에는 '인신공양'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으나 아즈텍은 유별날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이들은 '꽃 전쟁'이라 하여 자신들에게 복속하거나 반항하는 부족을 제압하고 그들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이는 '멜 깁슨'이 감독한 '아포칼립토'라는 영화에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포칼립토의 영화 배경에 등장하는 문명은 마야와 아즈텍이 믹스된 환경을 배경으로 삼았습니다. 인신 공양의 경우 아즈텍을 따온 부분이 많습니다.-

 

그들은 제압한 노예들을 자신들의 도시로 데려와서 제사를 지내고 심장을 꺼내 태웠으며 시체는 인육으로 삼아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촘판틀리'라 부르는 해골탑을 만들기 위해 희생자들의 두개골에 구멍을 뚫은 뒤 꿰어서 걸어두기도 했습니다.

 

메소아메리카의 식인 풍습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부족한 단백질 공급, 종교적 관습, 미식 등이 있지만 이들이 인간 농장을 경영하며 대규모 식인을 한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단백질 부족 설은 반박되었습니다. 아즈텍인들은 인육을 나중에 찾아오는 코르테스 일행에게 대접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통제력을 유지하고 인육과 제물들을 지속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주변 부족들을 엄격하게 관리했습니다. 일종의 인간 사육장을 꾸린 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즈텍 인들은 최대한 싱싱한 제물과 인육을 위해서 적을 되도록이면 죽이지 않고 제압해야 했는데 여기서 가장 적절하게 사용한 무기가 바로 '마쿠아후이틀'입니다. 

 

석기 문명을 지닌 메소아메리카에서 마쿠아후이틀은 여러 용도로 활용되었습니다.

 

몽둥이에 흑요석을 박아 넣은 칼로 측면을 휘둘러 둔기처럼 적을 기절시킬 수 있었고 저항이 격렬하면 칼날이 박힌 부분을 휘둘러 적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양손으로 만든 것은 남성의 키 만큼이나 거대했으며 코르테스 일행이 타고 가던 군마의 목을 일격에 베어 죽인 기록이 존재할 정도로 날이 예리하지만 흑요석의 특성상 쉽게 깨졌으며 내구도는 낮은 편이었습니다.

 

마쿠아후이틀을 들고 싸우는 아즈텍의 전사들은 두 분류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꽃 전쟁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잡혔다가 해방된 '재규어 전사'들과 자유민과 귀족으로 구성된 '독수리 전사'입니다.

 

보기와는 달리 아즈텍인들은 동물 가죽을 입는 것을 야만스러운 일로 보았고 누비로 만든 옷 위에 깃털로 무늬를 넣어 꾸며 입었습니다. 투구 역시 실제 재규어 머리가 아니라 나무를 조각해 만들었으며 깃털이나 금, 보석으로 치장했습니다.

-문화 차이가 이래서 무섭습니다. 사람 가죽은 괜찮고 동물 가죽은 야만...-

 

이러한 아즈텍의 전사들은 꽃 전쟁을 통해 산 제물을 모았고 정기적으로 신앙과 관련된 축제를 벌였습니다.

 

 

3월에는 생명과 농업의 신 '시페 토텍'에게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희생자의 심장을 도려내서 공양하고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붉은 피부는 전 해의 작물을, 겉 피부는 새 해의 작물을 상징하며 심장을 뽑은 희생물은 그대로 계단에서 굴러 떨어트렸는데 이는 부족들이 모두 나누어 먹었습니다.

 

문제는 수백, 수천에 달하는 희생자를 만드는 일을 매년 행했다는 점입니다.

 

 

다음은 5월에 열리는 미의 여신 '소치케찰'을 기리는 축제입니다.

 

선택받은 소녀는 신과 결혼하기 위해 온 몸의 가죽이 벗겨지며 사제는 그 가죽을 입고 베를 짜는 시늉을 합니다.

 

그 외에도 일식이 벌어지면 사람을 죽이고 흉년이 들면 사람을 죽이는 등 수많은 인신공양 축제가 아즈텍에서 정기적으로 벌어졌습니다.

 


인육 제국의 마침표

아즈텍은 이러한 인신공양과 식인 문화를 자신들의 지배력으로 삼았습니다. 귀족들이 자신의 자식들을 바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희생자들은 아즈텍이 관리한 인간 사육장에서 납치한 부족민들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지배당하는 부족들은 아즈텍에 강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고 아즈텍은 이들의 인구를 계획적으로 관리하고 죽이고 먹음으로써 공포를 활용하여 그들을 지배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아즈텍이 전투에서 패배하면 이들 역시 똑같이 의식을 행하고 아즈텍 인들을 잡아먹기도 했습니다. 어느정도 힘이 동등한 부족 사이에서는 의례 행하는 의식처럼 취급되었고 약소 부족들에게는 그저 아즈텍이 더 강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러던 도중 바다 건너에서 에르난도 코르테스라 불리는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협상이 가능한 부족들은 회유하고 불가능한 부족들은 모조리 격파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갔고 아즈텍 제국이 지닌 엄청난 부를 갈취하기 위해 수백 명에 달하는 병사들을 이끌고 수백만의 제국을 공격하는 상상도 못 할 일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수백명의 코르테스 부대와 아군이 된 부족들 vs 아즈텍 제국입니다.-

 

그는 중앙아메리카에서 전진하며 시비를 거는 부족들을 모두 제압하며 협상을 시도했고 굴복하는 부족들을 통해 보급을 이어 나가며 끊임없이 진군했습니다.

 

 

그리고 일은 코르테스가 생각하던 것 그 이상으로 술술 풀리기 시작합니다.

 

코르테스에게 협력한 부족들은 아즈텍 인들에게 가축 취급을 받던 부족들이었고 이들은 인근 부족들에게 서신을 보내 도움을 요청하여 연합을 결성했습니다.

 

그 결과 코르테스를 따르며 아즈텍에 반하는 부족들의 위세는 날로 크기를 키워 나갔으며 아즈텍 인들의 공격을 모두 격파하며 테노치티틀란에 도달하게 됩니다.

 

아즈텍의 황제 '몬테수마'는 이들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정치적으로 회유하기 위해 코르테스 일행을 자신의 궁전에 초대하는 실책을 벌이는데, 세간에서는 코르테스가 케찰코아틀의 화신으로서 아즈텍인들이 그들을 숭배하고 따랐기 때문이라는 낭설이 퍼져 있습니다.

-실상 아즈텍인들은 코르테스 일행을 케찰코아틀의 화신이라 생각한 적도 없고, 그들이 다른 대륙에서 온 인간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는 차후 코르테스의 정복에 신화적인 면을 부여하여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술책이 아니었나 싶은 의견이 있습니다.-

 

 

이후 코르테스는 몬테수마와 귀족들을 감금하고 황제를 꼭두각시로 삼아 통치를 시작하게 되며 그의 부하들은 '아즈텍 신상'들을 파괴하고 '성모상'을 놓거나 '인신공양'을 금지시켰고 황금들을 싹싹 긁어모아 창고에 쌓아 두기 시작했습니다.

 

코르테스는 반발하는 귀족의 화형을 집행하기도 했는데 아즈텍의 귀족들은 굴복하는 척만 하며 코르테스의 방식을 증오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코르테스가 자리를 비우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쿠바의 총독이 코르테스의 월권행위를 용납하지 못하겠다며 토벌군을 보냈고 코르테스는 이를 막기 위해 자신의 부관 '알바라도'에게 아즈텍 제국을 맡기고 부하들과 함께 떠나게 됩니다.

 

아즈텍의 귀족들은 코르테스가 떠나기 전에 '톡스카틀 축제'를 해도 되냐고 물어보았고 민심을 달래기 위해 코르테스는 이를 허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대규모 인신공양 축제가 남은 '알바라도'와 그의 부하들 앞에서 벌어지게 됩니다.

 

 

알바라도는 용맹하지만 감정적이었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그리고 코르테스의 부하들 역시 모두가 열렬한 신자에 속했으며 이들은 아즈텍인들이 벌이는 참상을 직면하게 됩니다.

 

이들은 참아내고자 했으나 결정적으로 알바라도의 휘하에 있는 '틀락스칼텍 부족민'을 통해 아즈텍이 코르테스 일당을 죽이려 한다는 정보를 받고 선수를 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톡스카틀 축제 자체가 틀락스칼텍 부족민들을 잡아먹는 축제였기에 그 역시 참을 수 없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알바라도와 그의 부하들은 축제를 벌이는 아즈텍 인들을 둘러싸고 학살을 벌이게 되며 이 때부터 코르테스가 테노치티틀란을 탈출할 때까지의 사건을 '슬픔의 밤'이라 합니다. 이 사건으로 아즈텍 귀족 600명이 몰살을 당하게 됩니다.

 


그가 정보 때문인지, 눈앞에 광경 때문에 그런 일을 벌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코르테스와 알바라도 일행들이 아즈텍을 정복하는 과정 속에서 마주 본 것들을 떠올려 보면 기독교도인 그들 입장에서 아즈텍을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은 분명하게 자리 잡혀 있었습니다.

 

여자와 아이를 가릴 것 없이 수만 명의 해골을 꿰어 만든 '촘판틀리.'

 

인간 가죽옷을 입은 재사장과 어린아이의 피로 반죽해 만든 신상.

 

죽은 임산부의 손가락을 달아놓은 방패와 사람으로 만든 요리를 대접하는 그들의 모습.

 

인간으로 만든 악기로 축제의 음악을 연주하고 '인간 북'을 칠 때마다 흔들리는 팔다리는 그들이 알던 지옥보다 더 끔찍한 광경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알바라도 일행이 아즈텍인들을 모두 죽이기란 불가능했고 코르테스가 돌아오자 전투는 본격적으로 가속화됩니다.

 

코르테스는 몬테수마를 활용해 전투를 소강상태로 이끌어 내려고 했지만 배신자로 낙인찍힌 몬테수마가 아즈텍인들이 던진 돌팔매로 죽음으로서 그마저도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고 결국 코르테스 일행은 테노치티틀란을 포기하고 도주하게 됩니다.

 

코르테스는 많은 손실을 입고 후퇴하는데 성공하며 이후 '슬픔의 밤' 사건을 본국에 알리고 제대로 지원을 받아 얻은 증원군으로 다시 한번 아즈텍을 침공하고 멕시코를 세우게 됩니다.

 

아즈텍은 코르테스가 '슬픔의 밤' 사건에서 탈출한 순간부터 급속하게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부족들이 적은 숫자로 아즈텍을 물리치는 코르테스 일행을 보고 반기를 들기 시작했고 아즈텍은 분열되기 시작했으며 코르테스가 다시 공세에 나서자 그와 합류하여 함께 제국을 무너뜨렸습니다.


결과적으로 아즈텍은 무너졌고 코르테스는 멕시코 총독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는 최대한 공정하게 직무에 임했으며 아즈텍의 식인 문화가 가축이 부족한 특성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유럽에서 돼지를 포함한 가축들을 들여옵니다.

 

아즈텍 제국은 주변 부족들을 사육장처럼 관리하며 가축처럼 다루었고 해소할 수 없는 원한을 지닌 잠재적인 적들을 사방에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제국에 쌓여 가던 불만을 코르테스가 폭발시켰습니다.

 

부족들은 해방되었으나 안타깝게도 그의 후임자들은 원주민들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무자비하게 부를 갈취했으며 아메리카에서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이 퍼지는 것으로 원주민들은 모든 저항력을 상실했습니다.

 

'꽃 전쟁', '슬픔의 밤'과 '아즈텍의 축제' 같은 경우에는 내용을 크게 생략한 점들이 있습니다. 이는 차후 다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아래는 마쿠아후이틀을 만들고 사용하는 영상입니다.

 

youtu.be/RDRaVOx-2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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