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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age Story/History Story

술탄의 하렘

by 늘상의 하루 2021. 1. 21.

하렘은 서브컬처에서 굉장히 많이 다룬 장르 중 하나이며, 솔직하게 말해서 저 역시 이쪽으로 먼저 하렘을 접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하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지니고 있었고 하렘을 생각하면 술탄 하나를 위한 주지육림이나 문란한 장소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알고 보면 보이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 존재합니다.

 

어쩌다 보니 제가 덕후라는 사실을 밝혀 버렸지만 오늘은 애니메이션의 학원물, 하렘물이라 불리는 것들의 기원이 되는 하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보통 서브컬처와 게임에서 등장하는 하렘 장르는 남자 주인공 한 명에 여러 히로인들이 등장하며 일부다처제에 가까운 문어발식 연애 관계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 나가곤 합니다.

 

작가의 플롯 혹은 소비자들의 니즈에 따라 메인 히로인과 서브 히로인으로 등급이 나누어지며 종래에는 한 명의 여자를 선택하거나 모두를 품고? 끝내기도 합니다.

-남자 주인공이 칼침을 맞거나 하렘이 걸려서 파탄 나는 엔딩도 있습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러한 전개 방식은 반대로 한 명의 여자와 여러 남자들이 등장하는 '역하렘'이라는 장르가 파생될 정도로 남녀를 불문하고 굉장한 인기를 누렸고 이후 미소녀 수집형 게임에서 흔히 채택하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유저를 히로인 모두가 좋아하는 전개는 수집형 게임의 개연성에 적절하기도 하고 '프리코네'나 '소녀전선' 같은 게임을 하다 보면 절로 마음이 힐링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오늘은 그 '하렘'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 생각입니다.


 

 

위 그림은 당대 유럽인들이 하렘을 보는 시각을 보여줍니다.

 

보통 오스만이나 옛 아랍의 왕국들을 떠올리면 먼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술탄과 그의 하렘을 생각하곤 합니다. 수많은 여자들과 문란한 성생활을 즐기며 주지육림에 빠져 살아가는 술탄.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이야깃거리로, 컨텐츠로서 굉장한 매력을 품고 있는 소재입니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었나봅니다. 유럽의 호사가들은 하렘에 대하여 끊임없이 망상을 부풀리며 술탄을 욕하고 부러워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와전된 경향이 있습니다.

 

 

하렘은 특별할 것 없이 왕비와 후궁들이 기거하는 장소입니다. 여기서 동서양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이슬람에는 남녀가 같은 공간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규율이 존재합니다.

 

유럽과 오스만이 교류를 하던 시절 술탄의 하렘에 접근할 수 없었던 유럽 여행자들은 하렘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를 듣고 온갖 망상을 부풀렸습니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비밀에 쌓인 아랍 왕국에 대한 이야깃거리를 들려주었고 하렘이 문란한 성생활을 즐기며 한 명의 남자에게 봉사하는 이미지를 퍼트린 것이 시작입니다.

 

물론 주지육림에 빠져 문란한 생활을 보낸 술탄도 존재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애당초 여러 명의 배우자를 두는 하렘 문화는 남녀를 불문하고 권력자들에게 으레 있어왔던 문화였습니다.

 

같은 하렘 문화를 지닌 무굴 제국은 물론 축첩제를 채택했던 옛 유럽 국가부터 동양의 왕국들까지 비단 아랍의 문명만이 아닌 다양한 문화권에서 유사한 문화가 존재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역사로 배운 조선 왕실도 이와 비슷하게 돌아갔습니다.-

 

 

다만 당대 유럽은 기독교의 일부일처 교리가 정착했기 때문에 군주가 직접 하렘을 모방하기란 엄청난 지탄을 받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고 권력자들은 술자리에서 하렘의 이야기를 듣고 경악하거나 부러워할 뿐이었습니다.

-예외로 루이 15세가 하렘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루이 왕의 정부인 마담 드 퐁파두르가 나이 때문에 성관계가 불가능하여 루이 15세를 위해 꾸린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렘은 정확이 어떤 장소인가?

 

이슬람 율법에서 남자는 능력이 허락하는 한 부인을 4명까지 둘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모든 아내들에게 같은 대우를 해야 했고 차별해서는 안 됐으며 부인이 아닌 첩의 경우 무제한으로 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아주 매우 힘든 일이었습니다.

 

 

유럽에서 교황이 성경을 들고 군주들을 노려보고 있었다면 이슬람 세계에서는 종교지도자 이맘 혹은 칼리파가 쿠란을 들고 술탄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신정일치인 시대라고 해도 수많은 무슬림 신하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니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렘에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다양한 계층의 여인들이 들어오기에 술탄은 이들 모두를 공평하게 대우해 주어야 했으며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술탄은 자신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격이라 그들이 편하게 기거할 수 있도록 아끼지 않고 온갖 지원을 해 주어야 했습니다.

 

 

결과적인 면을 본다면 하렘은 분명 왕의 여자들을 위한 장소임은 분명하나 새장 속에 갇혀 산다는 세간의 이미지와는 달리 그녀들은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었고 여자에 한정해서 손님들을 초대하고 대접할 수 있었으며, 궁 안에서도 각자의 방을 가지고 저마다 호화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에 앞서 발리데 술탄이라 하여 술탄의 어머니가 하렘에 기거하며 하렘을 관리했는데 하렘이 세간의 이미지와 같은 장소였다면 필연적으로 이슬람 사회 내부에서도 거부받고 지탄받을 일이었을 겁니다.

 

하렘은 이름이 가진 이미지와는 달리 궁전에 속한 정치적인 장소였으며 술탄의 총애에 따라 여인들 간의 서열이 정해졌습니다.

 

그중 가장 높은 서열은 발리데 술탄을 제외하고 왕의 정부이자 계승자를 낳은 하세키 술탄이며 술탄의 부인들 아래로는 환관과 시녀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후 18세기 오스만 대사인 남편을 따라 오스만에서 삶을 살며 하렘의 여성들을 인터뷰한 '메리 위틀리 몬태규'가 하렘의 생활이 실상 알려진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터키 대사관 편지'를 여러 차례 보내지만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이후 19세기에 엘레나 디미트리예비치가 술탄의 허락을 받고 하렘에서 1년간 기거하며 집필한 'Pisma Iz Niša O Haremima'에서 하렘의 진실을 알리게 됩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고착된 이미지를 벗어나기는 힘들었는지 동서양의 문화 차이가 문란하고 권위적인 장소라는 하렘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켰고 이후 컨텐츠에서는 하나의 장르로 정착할 만큼 와전된 강렬한 인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조선의 왕실에 있는 내명부 또한 이와 비슷하기에 사극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여인들의 궁중 암투와 대입해서 본다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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