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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elop Story/Game Designer

입체적인 경험을 위한 환경 스토리텔링

by 늘상의 하루 2023. 2. 12.

Fallout4 의 타이틀 씬과 호그와트 레거시의 도입부 장면

저는 베데스다의 RPG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입니다. 엘더스크롤폴아웃에서 보여주는 시나리오 미션들과 사이드 스토리는 직접 그 세계에 빠져들고 일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보통 베데스다 게임의 강점과 매력을 이야기할 때 높은 자유도와 선택지를 이야기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세계관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과 몰입 과정은 단순히 자유로운 선택지가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베데스다는 살아있는 세계관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유저가 온전히 세계관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정말 많은 것들에 공을 들였습니다.

 

유저의 시나리오 진행도에 따른 이슈를 언급하며 대화를 나누는 NPC들,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잠입 상태로 적에게 다가가는 플레이어, 타오르는 모닥불, 잠을 자는 적 NPC와 그 옆에서 굴러다니는 술병, 테이블 위에 놓인 무기와 빈 캔, 음식들...

 

하나의 전투를 만들기 위해 환경을 구축하고 암시적인 스토리텔링을 부여하는 그들의 방식은 무의미하게 스쳐 지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때때로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내가 살아있는 세계 속에서 모험을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곤 했습니다.

 

그러한 요소들이 없더라도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환경 요인에서 전달되는 모종의 감정은 플레이하는 저 자신을 보다 깊은 게임 속으로 끌어당겼고 역할 그 자체에 몰입하는 플레이 경험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최근에는 호그와트 레거시의 환경을 통해 좋은 경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해안가 절벽을 따라 걷는 도입부에서 등장하는 거대한 성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그 존재만으로 랜드마크가 되어 호기심을 유발하고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구를 자극했습니다.

 

실제로 그 장소에 가까워지면서 고조되는 긴장과 기분 좋은 흥분 그리고 느껴지는 만족감은 단순히 아름다운 연출을 위한 표현이 아닌, 플레이하는 유저의 심층심리를 자극하는 의도된 무언가가 분명하게 담겨져 있었습니다.

 

한 번, 그 무언가를 인식하자 내가 플레이했던 게임들이 보여주는 미장센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오브제들로 이루어지는 암시적인 이야기들은 평면적인 경험을 입체적으로 끌어올려 실존감을 느끼게 만들었고 수많은 게임들이 이러한 기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를 환경 스토리텔링이라 부릅니다.


오브라 딘 호의 귀환 첫 챕터의 장면, 바이오쇼크 컬럼비아의 입장 전경

환경 스토리텔링

환경 스토리텔링은 구성된 환경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생각의 단초를 제공하며 감정을 이끌어 내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개발자가 의도하는 외부적 개입이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고민 요소입니다. 환경 그 자체만으로 의도하는 효과를 이끌어 내는 것이 환경 스토리텔링인지, 아니면 퀘스트 설명과 시각적 마커 같은 유인 요소로 어필하는 것도 환경 스토리텔링에 해당되는지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개입이 본질을 흐리지 않는지 판단이 필요합니다.-

 

오브라 딘 호의 귀환은 환경 스토리텔링 요소를 게임의 핵심 컨셉으로 이끌어낸 게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매 챕터마다 비네트 스타일의 단편적인 컷씬이 지나가면 시간이 정지된 정적인 세상을 표현하는 미장센으로 인상적인 스토리텔링을 제공합니다.

 

동적인 세상에서 진행되는 스토리텔링 또한 본질은 다르지 않습니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시리즈에서 유저는 공중도시 컬럼비아에 입장하면서 끊임없이 펼쳐지는 환경 스토리텔링에 노출되기 시작합니다.

 

기념적인 축제 속에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인물들, 폭동에 대한 신문 기사를 읽고 비판하는 남자, 백인과 결혼한 흑인의 사형식을 축제처럼 웃고 즐기는 이들까지...

 

스토리텔링으로 가득찬 세계는 이야기의 밀도를 높이고 생동감을 부여하며 보는이로 하여금 생각의 단초를 제공하여 세계관에 몰입하는 무대적 장치를 유저에게 제공하게 됩니다.

 

이렇게 마련된 환경 속에서 RPG를 플레이하는 유저는 저마다 역할을 지닌 페르소나를 가지고 플레이에 임하곤 합니다. 페르소나는 쉽게 컨셉 플레이로 이는 보통 직업이나 플레이 성향으로 표현되며 자신의 역할에 몰두할수록 보다 깊은 몰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무대가 준비되었고 액터가 등장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상호작용입니다.

 

환경은 유저의 페르소나를 지켜줄 수 있는 요소들을 제공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직업에 따른 상호작용, 성향에 따른 상호작용이 있습니다. 엘더스크롤 : 스카이림을 플레이하며 종족을 선택했을 때(예를 들어 카짓)  달라지는 NPC들의 반응을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만약 NPC들이 모든 종족에게 동일한 반응을 보여주었다면 이는 종족을 선택한 유저의 페르소나를 훼손하고 몰입을 방해하는 결과를 만들게 될 겁니다. 최소한 게임을 플레이하는 순간에서 핍진성을 깨는 상황을 절대적으로 피해야 합니다.

-핍진성에 대한 유명한 예시로 간달프가 AK47을 들고 있는 사진이 있습니다.-

실제 사용된 대장간 간판/ 킹덤 컴 딜리버런스 게임에 나오는 대장간 연출 씬 / 위쳐3 불타는 마을 장면

그러나 환경 스토리텔링을 즐기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지식과 정보가 필요합니다.

 

상기 이미지를 예시로 보았을 때 망치와 모루가 표시된 간판에 대한 기호학적 이해가 불가능하다면 유저의 입장에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

 

게임은 사람들의 이해를 돕고 몰입을 높이기 위해 단편적인 비네트처럼 연출된 장면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대장간 내부를 보여주며 망치질로 연장을 만드는 대장장이를 포커싱하고 줌아웃으로 건물을 빠져나오며 간판으로 장면을 마무리한다면 유저는 연출된 미장센 속에서 자연스러운 이해와 몰입 단계를 거쳐 이제 간판만 봐도 그곳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다음으로 이곳이 대장간이라는 시청각적 정보와 스토리텔링이 필요합니다.

 

평화로운 마을에 대장간이 있다면 그곳에서는 망치질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울려 퍼져야 합니다. 그리고 대장장이는 가죽 앞치마를 두르고 불에 그을리거나 검댕이 묻어 있어야 하며 주머니든 손이든 연장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적인 이미지 영역이며 이를 벗어나면 괴리감을 느끼고 몰입을 방해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괴물에게 습격당한 마을이라면?

 

집들은 무너지고 대장간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을 것이며 잔불이 타오르는 소리와 함께 건물 안에서는 망치를 쥐고 발버둥치다 쓰러진 대장장이의 시체가 있을 것입니다. 그가 단순히 죽어있는 것이 아니라 탈출을 위해 창문을 넘거나 맞서 싸우고자 괴물의 시체와 뒤엉킨 모습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의 미장센은 유저에게 맥락을 추론하는 아이디어 감정적인 무드를 제공하고 상상력을 자극하여 이야기에 대한 자발적인 참여와 몰입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여기에 관련성 있는 이벤트를 가미한다면 환경이 의도하는 상황에 플레이어를 꾸준하게 밀어 넣으면서 보다 높은 몰입 퀄리티, 무드의 해소, 만족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환경은 환경일 뿐이라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페르소나를 착용한 플레이어의 몰입은 오롯이 플레이어의 선택이며 그가 대장장이의 시체를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게임 플레이에서 대장장이의 시체에 중요한 단서가 숨겨져 있다고 합시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머리를 쓰는 것에 관심이 없는 일자무식 광전사의 페르소나를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플레이어에게 시체를 탐색하고 환경을 조사하는 일을 강제한다면 그는 자신의 페르소나에 대한 몰입을 방해받을 수 있습니다.

 

좋은 방법은 이러한 과정 역시 플레이어의 페르소나를 고려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단서 없이도 클리어 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을 제시하거나, 함께 간 동료 NPC에게 그 역할을 맡길 수도 있습니다. 또는 야만스러운 선택지 (시체를 걷어찼는데 무언가 눈에 띄었다.)와 같은 선택 요소를 제시하는 것으로 유저의 몰입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플레이 경험이라 한다면 저는 이 또한 레벨디자인의 일환이라 생각하며 보고 듣고 즐기는 것을 넘어서 플레이 이후에도 이야기거리를 남겨주는 퀄리티 있는 디자인과 경험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디즈니랜드, 원신의 몬드성, 엘든링 황금 나무, 호그와트 레거시 초반 장면

중심이 되는 랜드마크

게임을 플레이하면 때때로 인상적인 구조물을 목도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나온 호그와트 레거시가 이러한 요소를 굉장히 멋지게 어필했습니다.-

 

환경 속에서 강력한 존재감으로 무드를 만들고 포커싱되는 오브제는 유저의 시선과 동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하여 흥미를 자극하고 강력한 내적 동기를 만들어줍니다.

 

이러한 랜드마크는 게임 속 지표가 되어 암시적인 레벨 디자인을 구성하고 게임 플레이에 방향과 단서를 제공하여 유저 스스로 장소에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수많은 게임들이 이러한 방법론을 차용하고 있으며 이를 위니 'Weenie' 기법이라 설명합니다.

 

위니는 월트 디즈니가 디즈니랜드 공원을 디자인하며 처음 사용한 기법으로 멀리서도 볼 수 있을 만큼 눈에 띄고 흥미로운 랜드마크를 각 구획에 배치하여 동선을 구축하는 방법입니다.

 

디즈니랜드를 즐기는 모든 과정이 끊임없이 이어지도록 유기적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랜드마크를 발견한 관객의 동선은 자연스럽게 조정되어 경로를 따라 놀이기구를 타고, 액터들과 만나고, 간식을 사 먹거나 휴식을 취하게 됩니다.

 

또한 몰입을 유지하기 위해 스토리텔링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를 배제하였으며 놀이동산 지하에 매직 킹덤 터널이라 불리는 거대한 직원 전용 공간을 만들어 액터 외의 직원이 지상으로 올라가 환상을 깨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놀이공원에 놀러 온 것이 아니라 디즈니랜드라 불리는 실존 세계에 모험을 떠난다는 접근과 노력이 컨텐츠에 실존감을 부여하여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그들의 가치를 끌어올린 비결이 아닐까 싶은 생각입니다.


환경 스토리텔링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평범한 놀이동산과 디즈니랜드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놀이동산은 단순히 놀이기구를 타고 스릴을 느끼며, 퍼레이드로 순간순간의 무드에 포커싱되어 있지만 결국 세계관과 참여자는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디즈니랜드는 환경에 테마를 구성하고 실존 세계를 구현한다는 접근으로 참여자로 하여금 입장하는 순간부터 내가 특별한 장소에 왔다는 느낌을 전달합니다.

 

작년 일본 여행에서도 이러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일본의 몇몇 특별한 관광지들은 입장 티켓부터 동선까지 소소한 컨텐츠를 만들어 이야깃거리를 남겨주는 스토리텔링을 구성했습니다.

 

이는 지금껏 단순히 들어가서 보고 나오는 평면적인 관광과는 다른 입체적인 경험을 선사했고 지금도 이렇게 이야기를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발적인 홍보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미장센이 부여된 환경 스토리텔링은 창작자와 유저 모두에게 선택적인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없어도 플레이하는데 지장은 없으며 유저 또한 때때로 숨겨진 이야기를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환경 스토리텔링이 구축된 게임은 분명하게 평범한 게임과는 수준이 달라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유저의 페르소나를 지켜주며 끊임없이 몰입에 빠져들게 만드는 환경 스토리텔링과 상호작용은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창작자가 만들어낸 이야기에 대한 유저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발적 참여는 게임이 끝나더라도 유저에게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남겨줍니다.

 

단순히 소비되고 끝나는 것이 아닌 유저가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그리고 의견을 제시하는, 자발적으로 참여한 세계관이 되기 때문에 창작이라는 주체를 창작자와 소비자가 공유하는 보다 세련된 컨텐츠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