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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elop Story/Game Designer

턴제 게임의 전술과 전략

by 늘상의 하루 2023. 10. 6.

내 차례가 아닌데 내가 이득을 얻는 대표적인 보드게임 카탄

 

실시간 게임들은 플레이 과정 속에서 상대방의 행동에 따라 즉각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게임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습니다.

 

반면 턴 게임들은 정해진 결과값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를 두고 차례를 주고받습니다. 자신의 턴이 끝나면 상대방의 턴을 기다리고 그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상대방의 차례를 기다리는 일은 그닥 즐거운 경험이 아닙니다.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며 여기에 게임 특유의 복잡성이 더해지면서 턴 게임이 익숙하지 않은 유저들에게 진입장벽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아마 턴 게임의 개발자들은 약점을 알고 이러한 고민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내 차례가 끝나도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까?

상대방의 차례가 되어도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까?

 

정말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 턴 게임들은 단순히 턴을 주고받는 것이 아닌, 독자적인 게임 룰을 구축하여 내 차례가 아니더라도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게임 룰을 바탕으로 유저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차례가 끝나도 상대방에게 영향력을 남길 수 있는 변수를 추구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플레이를 주도하게 됩니다.

 

자신의 턴 안에서 플레이하는 개념을 넘어 상대방의 플레이에 개입하는 플레이를 만드는 것.

 

이를 턴제 게임의 전술 또는 전략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전술 전략의 바탕이 되는 턴 룰을 살펴보겠습니다.


마블스냅과 스타레일

동시턴 게임과 순차턴 게임

턴 게임은 동시턴과 순차턴으로 구분지을 수 있습니다.

 

동시턴 게임들은 가위바위보와 같이 상대방의 행동을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움직이고 서로의 결과를 확인하는 시스템을 지니고 있습니다.

-실시간 게임들은 이러한 동시턴 시간개념을 아주 촘촘히 이어붙였다 할 수 있습니다.-

 

포켓몬스터나 마블스냅이 그렇습니다. 일반적인 턴제 게임은 상대방의 행동이 끝난 뒤 차례를 넘겨받지만 동시턴 게임은 상대방이 무엇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높은 추론 과정이 요구되거나 에 기대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방의 포켓몬을 확인하고 해당 포켓몬이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 어떤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지, 내가 적이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상상하며 변수를 줄여나간 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적의 행동을 실행합니다.

 

교전이 시작되면 포켓몬의 능력치에 따라 선공 후공이 결정되며 서로의 행동에 따른 결과값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동시턴 게임은 상대방의 행동을 지켜보고 기다리는 과정이 극단적으로 축소되어 있으면서 상대방이 무엇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선공 후공에 따른 불합리가 없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순차턴 게임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적인 턴제 게임의 플레이방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내 차례, 상대방의 차례를 번갈아가며 진행하며 차례가 넘어간 동안에는 상대방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동시턴이든 순차턴이든 같은 턴제 게임이라도 하나의 기물만 행동하는지 아니면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기물이 행동하는지에 따라 추구하는 방향성과 플레이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존 턴 게임의 룰에서 가치처럼 뻗어나간 두 방식은 완전히 다른 플레이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게임의 방향성과 의도에 따라 적절한 시스템을 선택하거나 조합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문명과 유희왕

한 턴에 모두 움직이기

주어진 턴 안에서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것을 움직이는 시스템은 매우 많은 기물을 움직이거나 행동 요소가 많은 게임에 유리합니다. 대표적으로 문명과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과 유희왕과 같은 TCG 장르를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을 단일 턴 게임이라 부르겠습니다.

-이에 따른 명확한 명칭을 아시는 분은 공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단일 턴 게임의 턴 진행 방식 (플레이어가 늘어나도 진행 방식은 동일하다.)

 

단일 턴 게임은 자신의 차례에 모든 기물을 움직일 수 있는 만큼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합니다. 상대의 기물들이 어디로 움직일지, 무슨 행동을 할지, 어쩌면 가만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매 턴마다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전략성이 강한 빌드업 플레이를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 번에 움직일 수 있는 기물의 수가 많은 만큼 각각의 기물들이 지닌 영향력은 크지 않습니다. 상호보완적인 기물들이 모여 한 턴 안에서 집단행동을 하여 거대한 영향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플레이의 골자입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유저의 플레이는 거시적인 형태로 변화합니다. 이득이 되는 수를 놓고 손실을 보는 수를 차단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하고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강요합니다.

 

상대방의 플레이를 자신의 예측가능성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으로 변수를 통제하고 상대방의 행동을 자신의 의도대로 유인하는 턴을 빼앗는 경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만 선공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게임 특성상 공정한 플레이를 위해 후공에 이점을 주거나 행동에 따라 소비되는 코스트를 부여하여 플레이에 밸런스를 맞추기도 합니다.

 

문명과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 장르는 선공이 압도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유저와 유저가 경쟁하는 PVP 진행시 합의에 따라 동시턴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합니다.

 

행동할 수 있는 기물은 많지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한정되어 있어 상대방의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 역시 턴당 제한시간을 둠으로서 문제를 보완하고 있습니다.


발더스 게이트3와 워테일즈

한 턴에 하나만 움직이기

주어진 턴 안에서 하나의 기물만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은 적은 수의 기물을 움직이거나 각 기물들의 중요도가 높은 게임에서 유리합니다. 대표적으로 발더스 게이트와 같은 턴제 RPG 장르를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을 주기 턴 게임이라 부르겠습니다.

-이에 따른 명확한 명칭을 아시는 분은 공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기 턴 방식의 턴 진행 방식 (행동 순서를 정하는 방법도 달라질 수 있다)

 

주기 턴 게임은 게임은 자신의 턴에 하나의 유닛만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고전적인 턴 게임과 다른 점은 상대방과 나를 포함하여 필드의 모든 유닛이 행동을 끝내야 하나의 주기가 끝난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원활한 플레이를 위해 유닛들의 행동 순서가 공개되어 있으며 상황에 따라 상대방의 행동에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합니다. 행동이 파편화된 만큼 각 유닛들의 중요성은 높아졌으며 단기적인 관점에서 즉각적인 상황에 대처하는 전술성이 강한 플레이를 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유닛의 순서를 결정하는 시스템은 두 갈래로 나누어집니다.

 

유닛의 능력치를 기반으로 줄 세우기를 하거나 행동이 남은 유닛들 중 하나를 자유롭게 움직이는 방법입니다. 얼핏 같아 보이지만 두 시스템은 난이도와 깊이 측면에서 서로 다른 경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능력치 기반의 발더스 게이트3의 경우에는 유닛이 지닌 스텟을 바탕으로 우선권 주사위라는 랜덤 요소를 사용해 행동 순서가 결정되기 때문에 유저는 적보다 우선권을 잡기 위해 전투 전에 도핑을 하거나 특별한 방식으로 유닛을 육성하는 등 복합적인 경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에서는 같은 전투를 반복해도 다르게 느껴질 수 있으나 게임의 복잡성이 높아지고 운 요소의 기여가 크기 때문에 치밀한 계산 속에서 진행되는 플레이와는 상반된 경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남은 행동에 따른 자유 이동 기반의 워테일즈는 자신의 차례에 원하는 유닛을 움직일 수 있는 만큼 변수가 적고 진입장벽은 낮아졌으며 캐주얼한 플레이 경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에서는 고려할 수 있는 요소가 전자와 비교하여 많지 않습니다. 캐주얼한 진행 방식을 차용한 만큼 불확실한 요소의 비중을 줄이고 그만큼 직관적인 계산 속에서 진행되는 플레이 경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기 턴 게임은 파편화된 행동 순서로 유저의 행동에 따른 결과가 즉각적으로 도출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파편화된 순서로 인하여 빠르게 차례를 주고받아 상대방의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으나 상대방의 차례가 오기 전에 제압해야 하는 등 획일화된 플레이가 고착되기 쉬운 문제가 있기도 합니다.


턴의 진행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게임은 전체적인 빌드업에 따른 전략적 경험하나의 영향력으로 보여줄 수 있는 전술적 경험을 입체적으로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턴 룰을 바탕으로 턴제 게임들은 내 차례가 끝나도 내가 플레이하는 것 같은 경험을 유저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여러 규칙과 장치들을 만들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통제 영역 ZOC가 있습니다. 실시간 전략 게임에서 보여줄 수 있었던 진형, 위치, 유닛의 특성에 따른 전술적 우위를 차례를 주고받는 턴 게임에서 구현했습니다.

 

탱커 유닛과 인접한 상태에서는 이동력이 감소하거나, 교전중인 유닛 외에는 상호작용 할 수 없거나, 상대 유닛의 교전범위를 벗어나면 기회 공격으로 타격을 받는 등 각 게임마다 ZOC를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보다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요소로는 필드에서 특별한 행동을 했을 때 반응하는 기믹이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내 차례가 아닌 상황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일종의 트랩처럼 작동하여 게임 속 스킬아이템의 효과로 붙어 있고 혹은 딜레이가 있거나 누적되거나 중첩되거나 시너지를 일으키거나 반발하는 등 여러 효과를 사용하여 보다 퀄리티있는 전술, 전략적 플레이 경험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꽤.. 아니, 정말 재미있습니다.

 

상대방이 건설하기 직전의 불가사의를 빼앗고, 상대방의 차례가 오기 전에 유닛을 제거하여 턴을 없애버립니다. 상대방이 움직이려는 찰나 기믹이 작동하여 기절하고, 상대방이 스킬을 쓰지 못하게 침묵을 겁니다.

 

이처럼 전술과 전략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면 어떻게 해야 상대방의 기회와 노력을 박탈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몰입되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러한 분석과 주장이 항상 옳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반대되는 환경에서도 몰입이 발생할 수 있고 완전히 새롭고 독자적인 룰을 통해 또 다른 방향과 가능성을 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이 의도를 가지고 마련되어 있다면 보다 명확한 방향성을 지니고 몰입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글로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보충할 내용이나 조언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신규 프로젝트로 정신없던 와중 발더스 게이트 신작이 나와 정말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연말이 되어서야 조금 풀릴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