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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elop Story/Game Designer

잡템이 만드는 게임 플로우

by 늘상의 하루 2024. 4. 28.

발더스 게이트의 신성한 살라미

 

발더스 게이트3를 마무리하고 커뮤니티를 살펴보며 다른 유저들의 플레이를 살펴보고 있던 와중이었습니다.

 

그중 제 시선을 사로잡은건 신성한 살라미 메타였습니다. 살라미는 음식 잡템으로 취급받지만 장비로도 쓸 수 있는 독특한 아이템입니다. 여기에 온갖 버프를 떡칠하여 무기로 사용하는 컨셉이었습니다.

 

무능할 정도의 낮은 스텟과 음식이라는 조합으로 예능이나 다름없는 살라미를 유저들이 게임 내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쓸모 있는 것으로 만드는 플레이가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살라미는 효율 측면에서 냉정하게  바라본다면 존재할 필요가 없는 아이템입니다. 유저들이 살라미를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지는 지표를 가져와 따지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사용 빈도수가 낮고 아이템 자체가 없어도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살라미는 발더스 게이트3 내부에 존재하며 컨텐츠와 마케팅 측면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만들었습니다. 음식으로 적들을 물리친다는 컨셉은 입소문을 타고 커뮤니티의 이야기 소재가 되는데 성공했습니다. 살라미를 만든 라리안의 히스토리를 살펴보면 유저와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을 진정 놀이로서 접근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게임을 하다 보면 가끔 엉뚱하거나 뜬금없는 아이템들이 등장하며 색다른 경험을 제공합니다.

 

생각은 좀 더 이어졌습니다.

 

게임 속에는 이런 뜬금없는 것들 외에도 너무나 많은 아이템들이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잡템이라 부르는 것들입니다.

 

잡템은 가치가 낮고 용도가 불분명하거나 성능이 매우 뒤떨어지며 흔하게 등장합니다.

 

어딘가 쓸모가 있을까 싶어 인벤토리에 넣어두지만 공간과 무게를 차지하고 상점에 되팔아도 의미 있는 보수를 받기 어렵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챙기는 것보다 그냥 버려두는게 더 나을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잡템은 게임 속에 존재합니다.

 

오히려 없으면 허전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잡동사니 아이템이 왜 존재하는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레드 데드 리뎀션2 사냥/ 발더스 게이트3 에메랄드 숲

쓸모없어 보이지만 쓸모있는

잡템은 일반적으로 유저들에게 계륵 같은 취급을 받습니다. 쓸모가 있기는 한데 보통 가치가 없고, 인벤토리 공간을 채우며, 무게도 나가기 때문입니다.

 

물론 역할은 존재합니다. 어떤 것들은 재료로 사용되고, 어떤 것들은 퀘스트에서 요구합니다. 어떤 것들은 부족했던 돈을 충당하기 위해 팔기도 하며, 어떤 것들은 단순히 정착지를 꾸미는데 사용하기도 합니다.

- 정말 사용처가 없는 내러티브용 아이템이 가끔 존재합니다. -

 

잡템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들의 독립적인 가치는 매우 낮지만 이러한 행동이 쌓이기 시작하면 잡템은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 그 이상을 수행하기 시작합니다.

 

크게 사실성, 가치 판단, 동선 아키텍처입니다.


드래곤즈 도그마2 고블린, 레데리2 주머니 뒤지기, 좀보이드의 인벤토리와 아이템

사실성

게임 속에서 몬스터를 죽이면 보상으로 골드를 드랍합니다.

 

이 골드는 어디서 나온 걸까요?

 

단순한 질문이지만 의외로 그 내면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몬스터들이 경제 활동을 진행할까요? 아니면 금속에 가치를 부여할까요? 그들이 반짝이는 것을 모으는 습성이 있을까요?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다닐까요? 어떤 게임들은 동일한 그룹의 몬스터가 항상 같은 금액의 액수를 드랍하기도 합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경험의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보통 이러한 모습을 보면 게임적 허용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반면 이러한 의문이 나오지 않도록 유저를 납득시키는 게임도 있습니다.

 

레드 데드 리뎀션2 에서는 동물을 사냥했을 때 시체에서 돈을 루팅하지 않습니다. 동물은 오직 가죽과 고기같은 부산물이 나오며 손수 가죽을 벗기는 애니메이션까지 구현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루팅한다 하더라도 시계, 담배, 반지와 같은 잡동사니들이 함께 드랍됩니다.

 

프로젝트 좀보이드는 엄청나게 많은 잡템들이 필드에 흩뿌려져 있습니다. 책방에 가면 책을 구할 수 있고, 약국에 가면 약을 구할 수 있습니다. 사실성에 기반한 아이템 스폰 패턴이 존재하며 유저들은 논리적으로 익숙한 패턴을 통해 현실 경험을 바탕삼아 게임을 진행하게 됩니다.

 

이와 비슷한 다른 게임들도 같습니다. 늑대를 죽이면 가죽과 고기가 나오고, 트롤을 죽이면 피를 얻는 방식으로 연결성 있는 보상물이 지급됩니다. 산속에서는 약초를 얻을 수 있고 강에서는 물고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 생선을 밭에서 수확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

 

획득한 잡템은 이어서 다른 컨텐츠와 연결되어 소비됩니다.

 

요리 컨텐츠를 통해 음식을 만들고, 장비 제작 컨텐츠를 통해 방어구를 강화하거나 제작하는데 사용합니다. 재료가 필요하면 특정 지역에 가서 파밍을 하고 게임 시스템에 따라 단계적으로 특별한 기술을 배워 가공합니다.

 

이처럼 현실과 유사한 연결성은 유저들이 게임을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응용하는데 도움을 주어 쉽고 간단한 수준의 가이드만으로도 빠르게 게임에 몰입시킬 수 있습니다. 잡템의 사용처가 없더라도 그것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세계의 볼륨감을 높일 수 있습니다.

 

다만 지나친 현실성은 유저에게 불편함을 요구할 수 있고, 지나친 비현실성은 난해함으로 이해를 방해할 수 있으니 진정한 의미의 게임적 허용이라는 타협이 필요합니다.

 

정리하면 유저를 납득시킬 수 있는 아이템의 수가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유저는 이와 같은 경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엄청난 무게의 폴아웃 뉴베가스 금괴 / 스카이림 인벤토리 / 디아블로2 인벤토리

가치 판단

아이템의 가치는 유저의 필요에 따라 결정됩니다.

 

현실에서도 게임에서도 통용되는 인류가 발견한 진리 중 하나입니다. 다만 게임은 준비된 컨텐츠에 따라 필요가 결정되기 때문에 기획자가 아이템의 가치에 개입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기본적으로 성능 혹은 사용처입니다. 이 아이템의 성능이 얼마나 좋은지, 이 아이템을 사용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것이 의미 있는 일인지, 어떤 NPC가 요구하는지 기획하여 쓸모를 부여합니다. 여기에 아이템을 얻기가 얼마나 힘든지 유통되는 수량을 컨트롤하면 더욱 정밀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가챠류 게임에서 새로운 캐릭터가 항상 기존 캐릭터들보다 강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능과 사용처를 부여하여 유저들의 필요 욕구를 이끌어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좀보이드와 같은 생존 크래프팅 유형의 게임들은 가치 판단 요소에 포커싱되어 코어메카닉이 개발됩니다. 유저는 플레이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가치 판단을 요구받습니다. 무수하게 많은 잡템 사이에서 쓸모 있는 것과 없는 것들을 구분해야 하며 자신을 압박하는 요인들에 대응하기 위해 효율적인 판단과 적절한 수집 행위가 요구됩니다.

 

.잘못된 판단은 게임오버로 직결됩니다. 기획자들은 이러한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수한 아이템 바리에이션을 제공하며 어떤 게임들은 사용처의 여지를 만들어주는 거래 자체를 배제한 경우도 있습니다.

-다양한 아이템 바리에이션은 유저의 컨셉 플레이라는 요소도 자극합니다.-

 

이러한 방식의 가치 판단은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는 심리적 보상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자신이 잘못된 판단을 하면 상황을 복기하고 다시 도전하게 만드는 몰입을 제공합니다. 잘 만들어진 아이템 컨텐츠가 만드는 결과입니다.

 

서로 다른 아이템과 가치를 비교하는 방법 외에도 심리적 보상을 자극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구매가와 판매가를 다르게 책정하는 방법입니다.

A : 유저는 늑대를 잡고 300원을 얻었습니다.
B : 유저는 늑대를 잡고 상점에서 400원에 파는 가죽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상점에 판매하려고 하니 판매 가격은 300원으로 책정되어 100원의 손실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보상 체계는 유저가 과제를 완수하거나 루팅을 했을 때 재화를 지급하는 것보다 거래 가능한 아이템을 지급하는 시스템과 강력한 시너지를 만듭니다. 이는 유저에게 실제 가치보다 높은 보상을 얻은 것 같은 허상같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유저가 얻은 이득은 300원이지만 기획자가 만들어낸 경제 세계에서는 이를 400원이라 주장합니다.

 

물론 이러한 호소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자체가 하나의 유인 장치임을 생각한다면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대 효과는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마지막으로 심리적 보상을 자극하는 요소는 무게와 공간을 통한 인벤토리 제약입니다.

 

유저가 한번에 들고 옮길 수 있는 아이템의 한계를 만드는 것으로 가치 판단을 넘어서 게임 플레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유저는 단순히 모든 아이템을 쓸어담는 것보다 합리적인 판단을 요구받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칸을 차지하는 것을 넘어 부피를 구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디아블로나 타르코프에서 사용하는 다중 셀 인벤토리(Multi Cell Inventory)가 그 예시가 될 수 있습니다. 유저가 더욱 높은 복잡성을 요구받기 때문에 인벤토리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컨텐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동 동선을 보여주는 달리기 어플과 한붓그리기

동선 아키텍처

처음 동굴을 나온 유저는 늑대와 전투를 시작합니다.
늑대를 잡고 늑대 가죽을 3개 얻었습니다.
튜토리얼을 따라 마을에 도착한 유저는 망가졌거나 낮은 레벨의 장비를 강화하기 위해 가죽 2개를 사용했습니다.
더욱 강해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가죽이 필요합니다.
유저는 늑대와 싸웠던 장소로 돌아가 파밍을 시작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아이템의 가치는 유저의 필요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저의 필요와 아이템의 가치는 기획자가 개입하여 인위적인 환경을 조성할 수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 아이템의 가치가 결정되었고, 유저의 동기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이제 유저는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행동해야 합니다. 몬스터를 잡아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면 몬스터가 있는 위치로 갈 것이고, 채집을 통해 얻을 수 있다면 해당 아이템이 서식하는 지역으로 갈 겁니다.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획득처와 아이템을 처리할 수 있는 소비처를 제공한다면 그 안에서 유저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에게 최적화된 동선을 스스로 설계하여 게임을 진행하게 됩니다.

 

보통 게임에서 이러한 영역을 사냥터와 마을로 구분지으며 획득처와 소비처의 역할을 구분하거나 바리에이션을 구성하는 것으로 유저가 동선을 설계하는데 있어 다양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여기에 인벤토리 제한 시스템이 들어간다면 유저의 동선에 마을 귀환을 추가하여 효율적인 동선 구축에 더욱 높은 복잡성을 요구하게 되며 획득처와 소비처의 평면적인 동선 구조를 보다 입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바탕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 인벤토리 제약은 보관함, 상자, 기지의 역할이 강조되며 유저의 수집 욕구를 강화하기도 합니다. -

 


인벤토리에 제약을 걸면 유저를 마을로 보낼 수 있습니다.

 

사냥터에서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에 따라 유저가 걷는 길을 구불구불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비슷한 용도를 지니고 있지만 서로 다른 아이템의 바리에이션을 제공하면 유저의 가치 판단과 컨셉 플레이를 자극할 수도 있습니다.

 

세계관의 사실성을 강화할 수도 있고, 유저가 엄청난 보상을 받은 것처럼 속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게임 요소의 뎁스는 타겟층에 따라 달라지지만 아이템은 유저를 움직이기에 최적화된 요소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인벤토리를 차지하던 별볼일 없던 잡템이 소비처가 등장하는 순간 가장 필요한 것이 되며 부족한 것들을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점화기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