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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elop Story/Game Designer

몰입하는 게임 디자인의 방향

by 늘상의 하루 2022. 4. 29.

최근 새로 산 게임을 하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유저는 게임의 어느 순간 몰입감이 사라지게 될까?

 

보통 게임에 몰입한다는 것은 그 게임이 미칠듯이 재미있어야 가능한 상황입니다.

 

제 경우에는 림월드, 문명, 크루세이더 킹즈, 마운트 앤 블레이드, 엘더스크롤 시리즈와 폴아웃 시리즈 등의 게임을 할 때 낮과 밤이 바뀌고 시간이 사라지는 몰입을 경험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닌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저마다 애정하는 게임을 하며 몰입을 경험한 적이 있을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몰입했던 게임들도 어느 순간 멈추고 손에서 떠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소위 우리가 현타라고 부르는 그 상황이 언제 찾아오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재미를 느끼는 과정은 너무나 다양하지만, 흥미를 잃는 과정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추상적인 이야기를 그닥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풀어볼 생각입니다.-


애당초 몰입이라는게 뭘까?

깊게 파고들고 싶어 찾아보니 행동심리부터 인지심리까지 시간을 가지고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는 분야가 나왔기 때문에 핵심적인 내용만 찾아 간추려 보았습니다.

 

몰입은 사전적 의미로 목표, 생각, 행동이 통일된 상태라고 합니다.

 

이해를 위해 레고를 예시로 들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자동차를 만들고자 목표를 가지고, 자동차의 뼈대를 머릿속에 그려 나가며 어떻게 만들지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 둘 부품을 조립해 나가는 행동으로 조금씩 몰입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제가 배트모빌 같은 난이도 있는 목표가 아니라 긴 블럭 하나, 네모 블럭 하나, 바퀴 네 개를 붙인 극한의 단순함을 추구한 자동차를 만든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분명 쉽고 빠르게 만들겠지만 스물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만들어진 단순무식한 레고 자동차는 제게 큰 의미를 주기 어려울 겁니다.

 

반대로 제가 레고 테마파크에 나올법한 실비율의 레고 자동차를 조립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덧붙여 제가 마지막으로 만져본 레고가 수년 전에 지하철에서 파는 미니 캐릭터 레고였으니 시작도 하기 전에 압박감을 느낄 겁니다.

-제가요? 저걸요?-

 

이처럼 우리는 지루함불안이라는 감정이 있기에 손쉽게 몰입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 실력에 비해 난이도가 너무 낮을 때는 지루함을 느끼고, 내 실력에 비해 난이도가 너무 높을 때는 불안을 느낍니다. 이러한 역치는 사람마다 가지각색이지만 결과적으로 목표에 대한 의지 상실과 스트레스는 동일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몰입은 조건이 필요합니다.

 

우선 자신의 실력에 걸맞거나 조금 더 어려운 도전 과제가 필요하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계획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계획을 따라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성공과 실패가 공존하며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하는데 저는 이것을 '예측 가능한 수와 불확실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측 가능한 수와 불확실성

보드게임을 할 때 가장 즐겁게 하는 방법은 자신과 비슷한 실력의 상대와 플레이하는 겁니다.

 

상대방과 나의 실력이 비등해야 게임을 이길 수 있는 가능성과 질 수 있는 가능성이 보여 수를 고민하게 되고 상황을 살펴 행동하며 자연스럽게 몰입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한없이 늘어지는 고민과 그에 따른 지루함을 치우기 위해 우리는 상대방을 재촉하는 것으로 고민의 여지를 주지 않고 선택을 강요하여 불확실성에 따른 긴장감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

 

저 공격을 내가 피할 수 있을까? 막을 수 있을까? 더 큰 피해를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자에서는 무엇이 나올까? 다음 방에는 무엇이 있을까? 점프로 뛰어넘을 수 있을까? 혹시 떨어지면 죽을까?

 

이처럼 게임에서 가능성을 품게 만드는 모든 불확실성은 그 자체로 도전 요소가 되며 인간의 뇌는 통제 가능한 불확실성을 내버려두지 못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공격이 오면 피하거나 스킬을 사용해 막아 볼 것이고, 더 큰 피해를 주기 위해 아이템을 바꾸거나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상자가 있으면 가서 열어볼 것이고, 맵 구석구석을 뒤져 무엇이 있는지 확인해 볼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유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가능성을 바탕으로 예측 가능한 수를 생각하고 행동하며, 게임을 정복할 수 있는 해답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공략이라 부릅니다.

 

불확실성 속에서 최선의 가능성을 선택하는 공략을 통해 경험이 학습된 유저는 이제 개발자가 마련한 새로운 불확실성 앞에서 불안이 아닌 기대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운의 비중을 높여 불확실성에 대한 몰입과 성취를 극대화시킨 장르가 도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몰입이 시작되는 겁니다.

 

다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돌아와서 유저는 어느 순간 몰입이 사라지게 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불확실성이 사라지는 순간 몰입도 함께 끝난다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몰입 디자인의 방향

유저 관점에서 불확실성이 없는 게임은 과정과 결과가 변하지 않으며 답을 알고 있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동전 던지기를 해서 항상 앞면만 나오는 동전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정말 앞면만 나오는지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동전을 계속해서 던지고 끈기가 있다면 수백, 수천번의 동전 던지기를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없는 동전 던지기는 동전의 앞뒷면이 똑같은 경우와 같습니다. 우리는 결과를 알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확인할 필요도 없고 던지기 자체를 시도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수백억 번을 던져도 동전은 뒷면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게임은 공격을 통한 치명타 발생부터, 맵 구조가 바뀌는 시스템까지 다양한 불확실성 요소를 만들고자 여러 방법을 사용하였으나 결국 컨텐츠의 한계는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항상 변수를 만들 수 있는 요인이 있을까 고민했고 결론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겨루는 PVP에 포커싱하게 됩니다.

 

유저의 컨디션과 역량, 주어진 환경, 상대방의 행동, 게임 시스템과 통제 불가능한 확률이 매 판마다 새로운 변수를 만들고 전과 다른 경험을 선사하며 때때로 예측하지 못한 상황을 발생시켜 긴장을 제공하는 플레이는 단순히 운에 좌우되는 불확실성을 넘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유저의 개입으로 새로운 변화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유저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환경을 바꾸고자 끊임없이 상황을 파악하고 최선의 수를 고려하며 행동하게 됩니다.

-바둑이 왜 수 싸움의 끝판왕인지 이제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비되는 적절한 예시로 '오브라 딘 호의 귀환'이라는 추리 퍼즐 게임이 있습니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동인도회사의 수사관이 되어 실종되었던 선박에 올라 탑승객들의 사인을 조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수십여명의 탑승객들의 이름, 직책, 사인을 알아내야 하기 때문에 게임은 시작부터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며 게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유저에게 힌트를 주는 것으로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게임은 첫 회차에서 압도적인 몰입과 놀라운 경험을 제공하지만, 환경은 정적이며 유저는 게임의 흐름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게임을 진행하며 무지로 인해 만들어지는 불확실성이 모두 소거된 순간, 처음 '오브라 딘 호'를 플레이하며 느꼈던 재미를 다시 경험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정답을 알고 있다면 5분만에 엔딩을 볼 수 있으며, 개발자 역시 이러한 특성을 인지하여 시작과 동시에 엔딩을 보는 내용을 도전과제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이에 따라 매 판마다 다른 플레이와 결과를 만드는 항구적인 불확실성을 내포한 경험은 더 강력한 몰입을 제공하고 게임의 반복 플레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결론

정리하며 이러한 생각과 내용에 따라 예측 가능한 수와 불확실성이 곧 몰입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저에게 있어 불확실성의 존재 자체가 자신의 역량보다 높은 단계의 도전을 의미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고자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항구적인 불확실성이 내포된 경험은 더욱 강력한 몰입을 제공하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고자 반복 플레이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게임에서 가장 강력한 향구적인 불확실성은 유저 그 자체이며, 다음으로 랜덤과 확률 요소입니다.

 

유저의 행동에 따라 변화하는 불확실성을 제공한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의미 있는 경험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추가적으로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이 몰입에 적당한가에 따른 밸런스적인 고민이 필요하게 됩니다. 끊임없이 어려운 단계의 몰입이 지속되면 쉽게 피로해지기 때문입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모델이 떠올랐기 때문에 이는 다음 글에서 작성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