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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age Story/History Story

빵 이야기

by 늘상의 하루 2021. 7. 25.

빵을 보면서 떠오르는 의문점이 있었습니다.

 

왜 서양 사람들은 밀로 밥을 지어먹지 않고 빵을 먹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쌀을 먹을 때는 껍질을 까는 도정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쌀은 크게 가장 겉껍질인 왕겨층, 중간 미강층, 내부 전분층이 있는데 도정은 여기서 미강층까지 벗겨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쌀은 마찰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껍질을 벗기고 제거 할 수 있지만 밀은 좀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밀알은 총 7겹의 외피로 구성되어 있어 껍질이 단단하고 밀알에는 글루텐 함유량이 높아 알맹이가 굉장히 부드러워 충격에 쉽게 부서집니다.

 

그렇기에 밀알을 먹기 위해서는 쌀알처럼 도정이 아닌 부수는 분식 과정을 거쳐 가루로 내어 먹게 됩니다. 밀알 껍질을 벗겨낼 수 없었던 과거에 빵을 만드는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 밀가루로 요리를 해 먹는 방법은 두 가지로 축약할 수 있습니다. 곱게 빻은 밀과 곡식으로 만드는 수프의 조상인 밀죽을 끓여 먹거나 적은 물을 섞어 반죽한 다음 구워 만드는 입니다.

 

밀알을 곱게 빻아서 가루로 만들고 이스트와 물을 넣고 반죽하여 구워낸 음식은 인류의 문명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지만 재미있게도 최초의 빵은 수천년이 흐른 지금의 빵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양한 재료와 조리법으로 발전했지만 근본은 그대로 계승되었기 때문입니다.

-빵을 주식으로 먹는 나라들은 최초의 빵과 디저트를 제외한 식사용 빵을 비교했을 때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겁니다.-


첫 빵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득한 시대가 등장합니다. 약 1만 2천년~1만 4천 년 전 요르단의 슈바이카 유적지검은사막 인근에서 인류가 만든 최초의 빵이 발굴되었습니다.

 

학자들은 유적지에서 탄화된 찌꺼기를 분석해 그 안에서 보리 귀리, 외알밀의 성분을 검출했습니다.

 

서로 다른 곡물인 보리, 귀리, 외알밀이 가루가 되어 한 덩어리 안에서 발견됨으로 이들이 곡식을 빻은 다음 물과 섞어 구워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빵과는 달리 이스트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학자들은 납작빵이라 부르는 플랫브레드 형태로 만들어졌을 것이라 보고 있으며 최초의 문명이었던 수메르보다 더 앞서 농경사회가 시작되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납작 빵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밀은 이후 메소포타미아라 부르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으로 퍼져나가 대량 생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기원전 5000년 경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 불리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메르 문명에서는 밀과 보리를 갈아 가루로 만들고 물을 섞어 반죽을 한 뒤 돌판에 납작하게 구워 닌다라고 부르는 빵을 만들었습니다.

 

닌다는 우리가 현재까지도 즐겨 먹는 플랫브레드의 조상입니다.

 

납작빵이라고 부르는 플랫브레드는 샌드위치 전문점인 서브웨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빵 중 하나이며 타코, 부리또 등에 들어가는 빵 역시 플랫브레드에 속합니다.

 

시간이 흘러 빵의 제작 방법도 조금씩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아주 먼 옛날에는 빵을 단순히 납작한 돌판에 굽는 방식을 사용했으나 수메르 사람들이 요리용 화덕을 만들어내며 우리에게 익숙한 돔 형태의 화덕 빵이 탄생하게 됩니다.

 

수메르인들의 식생활은 오랜 시간에 걸쳐 중동 식문화에 뿌리가 되었습니다. 빵의 탄생은 곧 술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되었습니다.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실수로 물이 담긴 항아리에 보리로 만든 빵을 빠트렸을 겁니다.

 

빵은 물속에 들어가 시간이 흐르며 점차 발효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항아리를 발견했을 때는 늦어, 물은 시큼하고 알 수 없는 묘한 액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얼핏 상했다고 생각하고 버릴 수도 있었지만 수메르인들은 그 이상한 음료를 맛보기로 결정했고 이 음료가 생각보다 맛있고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먹기 꺼림직한 것들을 먹어보는 인간의 도전적인 행동은 정말 미스터리하면서도 인류 식생활에 지대한 영양을 미친 위업을 이루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발명은 우르크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마법같은 음료를 발명한 수메르인들은 보리로 만든 납작빵 바피르(Bappir) 물에 적셔 발효시킨 시카루라 불리는 맥주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시카루는 공식적으로 최초의 맥주입니다. 하지만 분명 그보다 더 오래전에 맥주가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맥주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기원전 2500년경 아비도스 지역에 당대 최대 규모의 맥주 공장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원시 맥주인 시카루는 죽처럼 꾸덕하고 시큼하면서 달짝지근한 맛을 지니고 있었고 현대 맥주와는 달리 홉이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수메르인들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듯 사람들끼리 모여 앉은 다음 시카루를 항아리에 담아 긴 대롱을 사용해 서로 나누어 마셨습니다.

 

시카루는 발효시킨 빵 찌꺼기를 거르지 않고 만들었으며 기호에 따라 다양한 과일이나 곡물을 넣고 만들었기에 단순히 취하기 위한 음료가 아닌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하는 역할에도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발효 빵

기원전 2000년 경 이집트에서는 이스트가 들어간 최초의 발효빵이 등장합니다.

 

어느 시점에 누가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은 빵을 반죽한 후 상온에 두면 빵이 발효되어 부풀어 오르고 이 상태로 빵을 구우면 더욱 크고 부드러워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반죽을 만들어 두고 깜빡했거나 잠시 보관해 두었더니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입니다.

 

이후에는 반죽을 상온에 두는 것이 아닌 맥주를 넣어 발효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제빵소 옆에 양조장이 있던 상황이 계기가 되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습니다. 천연 발효로 반죽한 도우는 시큼한 맛이 났기 때문에 사우어 도우라고도 불렀습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알렉산드리아에서 무역을 하는 유럽인들을 통해 이집트의 발효빵이 그리스, 이탈리아 등지를 거쳐 유럽 전역에 전파되었고 효모를 넣고 발효시킨 이집트 스타일의 빵이 대표적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집트인들은 그 외에도 다양한 빵을 만들어 먹었는데 나일강을 항해하며 무역을 하는 이들을 위해 장기 보존용으로 구워낸 원시 하드텍 '두라(Dhourra)'를 만들어 먹기도 했습니다.


시민의 빵

로마가 들어서며 빵은 정부를 통한 배급이라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했습니다.

 

로마는 이민족들을 막아내고 영토를 넓히기 위해 군대를 먹여야 했으며 지금의 비스킷, 건빵의 기원에 가까운 부클럼, 혹은 부첼라툼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군대에 보급했습니다.

 

또한 민중의 환심을 사고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콜로세움에서 황제는 시민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우민 정책의 상징인 빵과 서커스라는 말이 비롯됩니다.

 

시민들은 빵을 접시 대신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포카치아라 불리는 피자 도우 같은 빵을 만들어 접시 대신 사용했으며 요리를 다 먹은 다음 포카치아를 뜯어먹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로마가 붕괴되고 중세 시대로 넘어오면서 포카치아는 트랑쇼와르에 접시 빵의 자리를 넘겨주었습니다.

 

중세 유럽의 귀족들은 트랑쇼와르 위에 요리를 얹음으로써 요리의 육즙과 소스가 빵에 그대로 스며들게 만들었고 요리를 다 먹은 빵 접시는 본인들이 먹거나 하인들에게 식사 대용으로 넘겨주곤 하였습니다.

 

이후 트랑쇼와르는 피자와 빠네라는 음식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빈민의 빵

컨텐츠에서 자주 등장하는 가난의 상징 흑빵도 있습니다.

 

중세 시절 농민들이나 빈민들은 고운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먹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밀 자체가 기후를 타면서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낮고 밀을 먹기 위해서는 분식(제분) 방법을 써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시 일반적인 사람들은 방앗간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풍차, 물레방아로 만들어진 방앗간은 영주의 소유였고 사람들이 방앗간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영주에게 추가적인 세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보리, 귀리, 호밀과 같은 잡곡을 섞어 거친 빵을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잡곡빵은 글루텐이 부족하여 잘 부풀어 오르지 않았을뿐더러 검은 빛깔을 띄는 모습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시카루처럼 흑빵을 이용하여 만드는 크바스라는 음료가 있습니다.-

 

크네커브뢰드와 토르티아

그 외의 빵

북유럽 사람들과 바이킹들은 긴 겨울을 보내고 바다를 항해할 필요가 있었기에 보존성이 뛰어난 빵이 필요했고 통호밀로 만든 크네커브뢰드를 주식으로 먹었습니다.

 

수분이 적어 빵보다는 크래커에 가까운 식감과 납작하고 넓은 모양이 보관하기도 쉽고 보존성도 뛰어났기 때문에 지금도 북유럽 쪽에서는 주식으로 먹는 음식 중 하나입니다.

 

메소아메리카의 주식 중 하나인 토르티아는 고대부터 먹어온 납작빵으로 밀가루가 아닌 옥수수가루로 만들어졌습니다. 중앙아시아의 난, 로티, 차파티와 비슷하지만 재료와 조리 방법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탄두나 화덕을 사용한 중앙아시아와는 달리 메소아메리카는 돌판에 토르티아를 구웠으며 토르티아를 만들 때 석회질이 섞인 물을 사용하여 옥수수의 영양분을 효과적으로 섭취했습니다.


빵의 변화

서쪽으로 이집트의 효모빵이 퍼져 나갔다면 동쪽으로는 효모 없는 수메르인들의 납작빵이 퍼져 나가면서 , 로티, 차파티라는 이름으로 각 지역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들은 탄두라 불리는 독특한 화덕에 빵을 구워 만들었고 이는 중앙아시아 문명 전역에 퍼져 나가 커리와 같은 지역의 특색 있는 요리와 함께 빵을 적셔 먹거나 요리를 쌈처럼 싸 먹고 있습니다.

 

납작빵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중동과 중앙아시아, 동아시아를 연결 짓는 실크로드를 따라 황하 문명에 도달했으며 빙이라 불리는 요리로 다시금 퍼져 나갔습니다.

로마에서 빵 위에 음식을 올려 먹은 새로운 시도를 한 것처럼 고대 페르시아 사람들은 빵과 빵 사이, 정확하게는 빵 속에 재료를 넣는 도전을 했습니다.

 

고대 페르시아 사람들은 요시파라라 불리는 만두의 조상을 만들었습니다. 만두는 중앙아시아 일대를 더 붙어 동쪽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에 전해졌으며 서쪽으로는 라비올리, 피에르기 같이 동, 남유럽에 퍼져나가게 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만두 또한 중앙아시아를 기원으로 삼고 있기에 타타르어 만트(манты‎), 아르메니아 만티(մանթի), 터키, 우즈베크의 만트(mantı‎), 위구르어 만타(مانتا), 타지크어 만투(манту) 등과 같은 어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인더스 문명에 도달한 납작빵은 실크로드를 타고 동쪽으로 뻗어나가 황하 문명에 도달했습니다.

 

이라 불리는 이 음식은 반죽을 얇고 넓게 펴 바른 다음 그 위에 부재료를 올려 구워 먹는 독특한 요리로 변신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전병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합니다.-

 

빙은 중국의 각 지역 특색에 따라 서로 다른 부재료가 들어가며 속재료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기본적으로 크레이프나 토르티야처럼 불판에 얇게 펴서 구워낸 반죽에 계란물을 입혀 코팅한 다음 소스를 펴 바르고 속을 채울 부재료를 얹습니다.

 

모습만 보면 타코, 부리또, 케밥, 샌드위치와 비슷하기도 하고 영미권에서는 크레이프를 만드는 방법과 비슷하다 하여 차이니즈 크레이프라 부르기도 합니다.

 

납작빵이 빙이 되었다면 발효빵은 우리에게 보다 익숙한 모습으로 변화합니다. 동아시아는 삶고 찌는 요리가 발달해 있었는데 여기서 후빙이 결합하여 새로운 요리가 탄생하게 됩니다.

 

만터우라 불리는 이 음식은 발효된 반죽을 찜기에 넣고 쪄낸 순수 100%의 밀가루 반죽입니다.

 

중국 농민공들의 눈물겨운 주식이자 우리가 중국에 가서 만두를 주문했을 때 실수로 받는 음식으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으며 담백하고 부담 없는 맛에 만터우를 주식으로 먹는 지역도 있습니다.

 

여기에 속을 채워 넣은 것을 우리에게 익숙한 호빵, 바오쯔라 불렀습니다. 우리가 가볍게 즐겨 먹는 호빵, 호떡 또한 중국에서 변화된 빵에 오랑캐 호(胡)를 사용하여 붙인 이름이기도 합니다.


동양의 빵

일본에는 16세기,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 빵이 처음 들어왔습니다. 다만 중국의 빙과는 달리 일본에서 쌀의 위상을 넘어서지 못했고 빵은 디저트로 자리 잡았습니다.

- 이는 조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에 빵을 전파한 이들은 포르투갈의 상인들입니다. 보존력이 높은 음식은 그만큼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말과 같았기에 유럽인들은 항해를 하며 빵을 오랫동안 보존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카리브와 인도에서 설탕이 대량 재배되면서 유럽으로 유통되었고 유럽인들은 빵에 설탕을 넣으면 넣을수록 보존기간이 길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빵에 설탕을 넣으면 효모가 함께 죽기 때문에 제대로 된 발효를 일으킬 수 없었고 효모가 없으면 부드러운 빵은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 대안책으로 나온 것이 바로 계란을 반죽에 섞어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부드럽고 달콤한 '스펀지 케이크'는 당시 스페인 카스티야 왕조의 이름을 따 '팡 데 카스텔라'라고 불렀습니다. 이후 포르투갈의 상인들은 '팡 데 카스텔라'를 보존식으로 가득 싣고 항해를 떠나 나가사키에 도착합니다.

 

유럽의 상인들을 맞이한 일본인들은 카스텔라가 주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에 빠져들었고 빵의 제조법을 배워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 속에서 비싼 설탕 값을 감당할 수 없었던 일본 설탕 대신 물엿을 넣어 만들고, 오븐이 없기에 특별히 고안한 솥으로 빵을 구워냈습니다. 이후 카스텔라는 일본의 '카스테라'로 변화합니다.

-설탕을 재배하기 위해 류큐(오키나와)를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들고 사탕수수를 재배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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