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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age Story/History Story

권력의 상징 - 레갈리아

by 늘상의 하루 2023. 3. 26.

루이 14세, 마리아 테레지아, 나폴레옹

우리는 늑대의 겉모습만 보고 무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인간 역시 그렇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사람은 모두 평등합니다.

 

사람들의 장신구와 옷을 모두 벗겨 한 자리에 세워 놓는다면 빈자나 부자나, 시민이나 정치인이나, 군인이나 종교인이나 구분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각자의 역할이 있는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무리를 이루고 공동체를 구성하며 그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 적어도 인간은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비슷해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역할을 알릴 방법이 필요해졌습니다.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자신을 설명하는 것보다 어떠한 상징을 두르고 보기만 해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 효율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누구인지 설명하는건 섹시하지 않네요-

 

그렇게 인간은 의미를 담은 가죽을 뒤집어쓰고 장신구로 몸을 치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장장이는 검댕이 묻은 앞치마를 두르고 망치를 쥐었으며 기사는 갑옷과 검을 착용합니다. 왕은 왕관을 쓰고 거지는 누더기를 입습니다. 군인은 군복을 입고 총을 파지하며 농부는 밀짚모자를 쓰고 쟁기를 끕니다.

 

이런 방법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오랜 시간동안 발전해 나가며 우리에게 스테레오타입을 형성하였고 프레임을 벗어난 모습을 보면 이질적인 다른 느낌을 받도록 만들었습니다.

 

인간을 계급으로 나누는 세상이라면 이러한 상징의 역할은 더욱 강조됩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옛 통치자들의 그림 속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특별한 왕관과 함께 있거나, 황금 지팡이(Sceptre)를 쥐고 등장하기도 합니다. 장식된 검을 차고 있기도하며 십자가 장식이나 금으로 이루어진 구체(Orb)를 들고 있기도 합니다.

 

그것들은 일종의 명함처럼 주인공이 어떤 권위를 지니고 있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를 표현하며 숨겨진 의미를 더함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야기를 보는 듯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레갈리아 - Regalia

통치자의 권력을 표현하는 상징들은 다양한 것들이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왕관 혹은 지팡이(Sceptre), , 보주(Orb) 같은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앰블럼이나 심볼 또는 기호, 심지어 의복을 염색하는 색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레갈리아는 권력을 상징하는 것을 넘어서 소유자에게 무형의 힘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소유자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명분을 만드는 도구로 쓰이고, 소유하는 것 자체만으로 주변의 존중과 존경을 이끌어 낼 수도 있습니다.

 

헝가리의 국보이자 기울어진 십자가로 유명한 성 이슈트반 왕관(Crown of Saint Stephen)은 소유하는 것 자체만으로 권력을 부여했던 대표적인 레갈리아중 하나입니다.

 

1000년 12월 25일 혹은 1001년 1월 1일, 헝가리 대공국이 신성 로마 제국 교황청의 인정을 받아 이슈트반 1세가 왕의 직위로 격상되며 교황에게 선물 받은 것으로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헝가리 대관식에 사용되어 역사의 상징이자 국권, 주권이 되어버린 국보입니다.

 

그만큼 아무나 가질 수도 없었습니다.

 

헝가리의 전통적인 관습법에 따라 왕이 되려면 성 이슈트반 왕관을 사용하여 세케슈페헤바르 대성당에서 대주교의 주관하에 대관식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선왕의 서거로 카로이 1세(1288~1342)는 왕위 계승자가 되었지만 반대파의 방해로 왕관도 없었고 헝가리 수도 부더와 세케슈페헤바르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결국 1301년 에스테르곰에서 다른 왕관으로 대관식을 진행하였고 헝가리의 전통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의 나이 13세의 일이었습니다.

 

전통을 지켜라

 

카로이 1세는 보이보드(Voivode)라 불리는 헝가리 대귀족들에게 거부당했습니다. 

 

그 틈을 타 이슈트반 왕관을 가지고 있는 보헤미아 왕국의 바츨라프 3세가 헝가리 국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곧 카로이와 바츨라프를 두고 헝가리는 양분되어 내전에 돌입했으며 교황 보나파시오 8세독일왕 알브레히트 1세가 카로이를 지지하며 전세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바츨라프 3세는 보헤미아의 선왕이 서거하자 두 왕국을 관리하기 어렵다 판단하여 이슈트반 왕관과 자신의 헝가리 왕위를 오토 3세에게 모두 넘겨주었습니다. 오토 3세는 전통에 따라 대관식을 진행했으나 교황과 대귀족들의 텃세를 이기지 못하고 왕위를 포기하였고 카로이 1세를 왕으로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슈트반 왕관은 카로이의 반대파인 헝가리 대귀족들에게 있었습니다.

 

카로이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왕관을 제작하여 새로운 대관식을 진행했습니다. 물론 헝가리인들과 귀족들은 전통을 지키지 않은 대관식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교황의 파문이라는 추가적인 압박과 카로이파의 공세로 대귀족들에게 성 이슈트반 왕관을 넘겨받고 전통을 지킨 대관식을 치르고 나서야 카로이 1세는 헝가리인들과 귀족들에게 공식적인 헝가리의 왕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 카로이는 즉위하는 과정에서 헝가리 대귀족들에게 수많은 방해를 받고 시달렸기 때문에 그들을 숙청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이후 대귀족들을 모두 꺾고 제압함으로 왕권 질서를 확립하고 국고를 채웠으며, 군사 및 경제 발전과 위업을 세웠습니다.-

 

욕망의 투쟁 끝에 소실된 레갈리아도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부터 시작하여 전해 내려온 중국의 전국옥새(傳國玉璽)입니다.

 

하늘에서 명을 받았으니 그 수명이 영원히 번창하리라

 

새겨진 명문처럼 전국옥새는 수천년 역사 속에서 중국 권력을 상징하는 레갈리아가 되어 수많은 통치자들이 욕망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옥새가 있으면 그들은 토호들의 지지를 얻고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었고 중원을 통일하는 천자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국이 분열되고 모두가 욕망한 대상이 된 만큼 많은 수난을 겪기도 했습니다.

 

옥새는 그 가치와 상징과는 달리 꽤 자주 던져졌는데, 진시황 때는 바다에 던져지고 한나라 시절에는 효원황후 왕씨가 던져 모퉁이가 깨지기도 했습니다. 광무제가 후한을 건국하여 모퉁이를 금으로 때웠고 삼국 시대에 들어서는 손견원술의 손으로 넘어가며 소유자가 굉장히 자주 바뀌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수많은 통치자와 국가를 넘나들며 옥새의 주인은 수시로 바뀌어갔습니다.

 

전국옥새는 전설처럼 내려오며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으나 진짜 전국옥새의 행방은 당나라 시절에 실전되었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허나 원나라 시절 만들어진 모방품인 대원전국옥새는 대만 고궁박물원에 남아 있으며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엄중하게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레갈리아는 단순히 상징성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함께 축적된 역사가 가치를 더해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심볼과 컬러

신분과 권력을 표상하는 물건은 레갈리아가 제격입니다.

 

하지만 레갈리아는 함부로 다룰 수 없을뿐더러 그래서는 안되는 물건입니다. 권력자들은 생활 속에서 자신들의 권위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그 역할을 가문의 역사를 표현한 심볼 컬러가 담당했습니다.

 

유럽에서는 부르봉 왕조의 심볼이 가장 유명합니다. 루이 왕들의 망토에 수놓아진 왕가의 상징은 그들의 그림에 담겨 지금까지 남아 위엄을 뽐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옛 통치자들의 그림을 살펴보면 루이 16세의 그림처럼 가문의 상징 혹은 권력을 표상하는 심볼이 담겨 있음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염색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이었기에 색상 또한 계급이 담겨 있었습니다.

 

선명하고 진한 색상은 대대로 권력자들의 사치품이었습니다. 비잔틴 제국 시절부터 전통적으로 보라색 염료는 황제의 상징이었고 선명한 파랑과 검정, 노랑은 각국의 왕실과 권력자들이 즐겨 입었습니다.

 

중동에서는 종교와 결부하여 녹색이 신성시되었고 동양에서는 청룡포, 곤룡포, 황룡포로 색을 입힌 시무복을 만들고 그 위에 금실로 용을 수놓아 권위를 표현했습니다. 

 

색을 바탕으로 금실로 심볼을 수놓는 패션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권력자들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레갈리아는 본래의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거나 역사적인 보물로 남아 박물관에 들어갔습니다.

 

불변의 속성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종교계에서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기도 하지만, 많은 레갈리아는 새로운 시대에 맞춰 브랜드라는 이름으로 변화하고 대중화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명품이라 부르는 기업의 로고가 박힌 옷을 입고 사회는 그런 상징들이 지닌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옛 통치자들이 레갈리아를 활용한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인만큼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본질 그 자체는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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