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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age Story/History Story

침대 위 신발

by 늘상의 하루 2022. 8. 13.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가끔 한국인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등장인물들이 집에 들어와 편히 쉬는 장면에서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신발을 신고 소파나 침대 위로 올라갑니다. 이 순간 우리 한국인들은 극도의 불안과 혼란, 분노와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실내에서 신발을 벗고 생활하며 좌식 문화가 스며든 한국 문화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실내에서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문화권들이 모두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위생 논쟁을 넘어 방금 구매한 깨끗한 신발을 신고 실내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문화가 만든 스테레오타입으로 인하여 그 자체로 불쾌한 감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제 사람의 기본적인 예의와 도덕 논쟁으로 이어집니다.

 

다 떠나서 단순하게 신발을 벗는 행위와 바닥을 청소하는 것을 비교해 봐도 실내에서는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실내에서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걸까요?

 

영국인 친구에게 물어봤으나 명확한 답은 듣지 못했습니다.

 

이들에게 실내에서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것은 의문조차 품어본 적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행동이며 때문에 친구들을 초대할 때 마다 항상 주의를 줘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친구는 집에서 신발을 벗고 생활합니다.-

 

왜 그런 차이가 발생했을까요?


언제부터 인간은 집 안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문화 벗고 들어가는 문화로 갈라섰을까요?

 

입식과 좌식 문화가 이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어 살펴보았습니다.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은 동굴과 움집에 모여 살며 음식을 나누어 먹고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며 쉬고 잠을 잤습니다. 대부분의 일은 바닥에서 이루어졌고 문명이 다음 단계로 발전할 때까지 이러한 풍조는 유지됩니다.

 

그것이 당대인들의 삶에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바닥을 평평하게 다져놓거나 필요하다면 섬유나 가죽을 깔아 부드럽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바닥에 주저앉아 쉬는 것은 편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가 넓은 만큼 사는 곳도 각양각색으로 변하기 마련입니다. 모든 땅이 온난하고 풍요로웠다면 더할나위없이 좋았겠지만 당장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을 둘러보아도 여름과 겨울이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차갑고 꽝꽝 얼어붙은 대지에서 주저앉아 쉴 수 없고, 습하고 더운 곳에서 옷을 꽁꽁 싸매고 살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실내에서 신발을 신는 나라와 신지 않는 나라의 차이는 환경에서 비롯됩니다.

 

덥고, 춥고, 습하고, 건조하고, 땅이 부드럽고 거친 요소에 영향을 받으며 풍습, 종교, 건축 방식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두 생활상을 문화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쉬는 방법, 밥을 먹는 방법, 잠을 자는 방법에서 좌식과 입식을 정의합니다. 이제 각 문화의 생활상을 살펴보며 그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게 된 주제인 실내에서 신발을 신는 이유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대 이집트의 입식과 좌식

이집트는 유럽과 서아시아에 많은 영향을 끼친 문명 중 하나입니다.

 

부유한 고대 이집트인들은 진흙을 구워 바닥에 타일을 깔았습니다. 이들은 식사를 할 때는 식탁과 의자에서 밥을 먹었고 응접실에서 깔개와 쿠션으로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소파와 깔개, 쿠션이 혼용되어 입식과 좌식을 함께 겸용했기에 명확한 구분은 없었으나 등받이가 있는 의자는 재료와 장식에 따라 왕족과 귀족들의 권위를 나타냈기 때문에 쉽게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바람에 실려오는 뜨거운 모래와 흙이 집안 바닥을 더럽혔기에 부유층들은 깔개나 침구에 올라갈 때를 제외하고는 실내에서 신발을 신고 생활했으며 관리가 잘 된 곳에서는 벗고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서민들은 좀 더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했습니다.

 

당시 이집트를 비롯하여 메소포타미아, 황하, 인더스 문명의 정착민들은 바닥재를 따로 구분하지 않았고 신발 자체가 상류층들의 의복 중 하나였기 때문에 주로 맨발로 생활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들은 밖에서 생활하던 그대로 안에서 생활했습니다.

 

신발이 대중화되고 보급된 이후에도 삶의 양식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바닥은 쉽사리 더러워졌기에 여전히 평민들은 안과 밖을 구분하지 않고 신을 신고 생활했습니다.

 

길거리에 동물들의 오물이 굴러다녔고 흙먼지는 아무 때나 집 안으로 흘러들어왔습니다.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집 안에서 가축을 키우는 경우도 있었고 습하지도, 춥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비싼 돈을 들여 바닥재를 깔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저분한 바닥과 떨어져서 생활해야 했기 때문에 침대와 의자, 식탁이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유목민의 입식과 좌식

시간이 흘러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는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양상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유목민들을 중심으로 카펫(Carpet)이라 불리는 직조물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카펫을 중심으로 파생된 다양한 직조물들을 사용하여 거친 땅에서 천막을 치고 바닥에 깔아 한랭한 냉기를 막아냈습니다.

 

도기 타일과는 달리 휴대하기 간편하고 부드러우며 단열 효과는 물론 심미적인 기능도 뛰어났기 때문에 카펫은 유목 문화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으며 다양한 문화에 퍼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카펫의 등장이 좌식 문화에 결정적인 역할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많은 유목민들은 여전히 실내에서 신을 신고 입식과 좌식을 혼용하며 생활했고 때때로 카펫 자체를 바닥재로 삼아 밟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좌식이 정착된 결정적인 역할은 종교가 담당했습니다.

 

이슬람 신도들은 기도하기 전에는 항상 손과 발, 목과 입을 깨끗히 해야 한다는 규율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이들은 실내에서 신을 신고 생활하기보다는 벗고 생활하며 청결을 유지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며, 하루에 다섯 번 절하며 기도해야 하는 이슬람 규율인 살라트를 지키기 위해 종교 활동을 위한 좌식 생활은 집안 내부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시간이 흘러 많은 이슬람 국가들은 바닥에는 카펫이나 러그를 깔고 실내에서 슬리퍼를 신고 생활하며 완전한 좌식 생활을 하거나 입식과 좌식이 혼용된 생활 공간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슬람의 영향을 받지 않은 몽골 계통의 유목 민족은 혼용된 입식 문화가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며 송나라 시대까지 있었던 중국의 좌식 문화를 몰아내고 자신들의 입식 문화를 정착시켰습니다.

 

허나 시간이 흘러 정착 생활이 지속되면서 몽골 역시 실내에서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문화로 전환되었습니다.


유럽의 입식과 좌식

유럽은 로마의 영향으로 실내에서 신발을 신고 다니는 입식 문화가 고착화됩니다.

 

로마는 풍부한 자원과 온난한 기후로 인하여 유목민들과 같이 카펫과 같은 바닥재를 깔 필요가 없었고 옛 시대부터 내려온 생활상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시대가 발전한 만큼 로마 시민이라면 가난한 이들도 신발을 신고 다닐 정도로 보편화되었으며 제정 시대부터는 신발이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항시 신발을 신고 다니는 문화에 힘을 얹은 것으로 추측합니다.

 

도로와 상하수도가 건설되고 포졸라나(pozzuolana)라고 불리는 원시 시멘트의 발명으로 주택 바닥재는 보다 매끄럽게 변했습니다. 하지만 인구가 밀집되면서 도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와 오물 문제는 점점 쌓여갔습니다. 시민들은 여전히 실내에서 신발을 신고 다녔습니다.

 

비교적 온난한 프랑스 땅에서 살아가던 갈리아 민족은 로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동유럽 북유럽에 사는 게르만, 노르만, 동부 슬라브 민족들은 환경 문제로 항상 신발을 신고 다니는 생활이 불가능했습니다.

 

이들이 살아온 터전은 눈과 비가 많이 내리거나 한랭한 기후를 지니고 있었으며 젖은 발과 몸을 녹이고 말려야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 실내에서 신발을 벗는 것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북부 바이킹들의 경우에는 롱하우스(Long House)에서 슬라브인들은 보온을 위해 덕아웃(dugout)이라 불리는 반층 정도 파서 만든 집에서 생활했습니다. 원시적인 화덕을 지닌 집들은 침상을 만드는 것으로 입식과 좌식을 겸용하는 생활을 꾸려 나갔습니다.

 

지상에서 만드는 통나무 오두막의 경우에는 바닥의 한기와 습기를 배제하기 위해 목재로 바닥재를 구성했습니다. 물력의 문제로 바닥재를 깔지 않는 경우도 많았지만 여유가 되면 바닥재를 깔고 실내에서 슬리퍼를 신었습니다.

 

실내에서 신발을 신는 경우에도 되도록 신을 벗어 발을 말리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벽난로나 화덕 앞에 카펫을 깔거나 발 받침대와 의자를 두고 자리를 잡은 다음 몸을 녹였습니다.

 

외출시 신발이 더러워지는 것은 동서를 불문하고 크게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옛 유럽은 부유층들을 중심으로 외출용 신발과 실내화를 따로 구분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럽에서 완전히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습니다.

-예외적으로 핀란드의 사미족들은 집 안 바닥에 가죽을 깔고 신발을 벗는 좌식 생활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농민들은 겨우내 보온을 챙기고 포식자와 도둑들로부터 가축을 지키기 위해 한 집에서 생활했으며 이러한 이유로 바닥이 쉽게 더러워졌기 때문입니다.

 

이후 현대에 들어서면서 바닥 난방과 건축 기술이 발전하고 실내에 신발을 신고 들어갈 필요가 없어지자 북유럽, 중유럽, 동유럽은 빠르게 실내에서 신발을 벗는 문화로 완전히 전향되었습니다.

 

반면 기후가 온난하여 난방에 큰 비중을 둘 필요가 없었던 서유럽은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문화가 유지되었고 현재는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신을 벗는 문화가 퍼져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아시아의 입식과 좌식

중국은 주나라 이전 시절부터 좌식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잠을 자고 밥상을 놓고 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으며 평민이 귀족을 만나기 전에는 신발과 양말을 벗는 것이 예절의 일부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유목민들과 교류가 점차 잦아지며 입식 생활이 뒤섞여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송나라 멸망 이후 유목민 왕조인 원나라 시대부터 완전한 입식 문화가 자리잡습니다. 하지만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신발을 신고 벗는 문화가 공존하는 상태로 유지됩니다.

 

중앙아시아 남쪽, 힌두 문명의 경우에는 기후와 종교의 영향으로 좌식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역시 몽골의 침략을 받았으나 격퇴하는데 성공하고 실내에서는 신발을 신지 않는 풍습이 유지됩니다. 차후 영국의 지배하에 유럽식 주택이 들어서고 신발을 신고 들어오는 문화가 등장하지만 큰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한국은 옛부터 좌식 생활을 했으나 중국과 마찬가지로 몽골의 영향을 받아 고려 시대의 귀족들은 침대를 사용하는 등 입식 생활을 영위했습니다. 허나 백성들의 삶까지는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기 때문에 상류층을 제외하면 큰 변화 없이 좌식 생활이 유지됩니다.

 

이후 임진왜란, 병자호란, 소빙하기를 통한 경신대기근을 겪으면서 보온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었고 물력이 많이 들어 만들지 못했던 온돌 주택이 대거 등장하면서 완전한 좌식 문화가 정착되게 됩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습하고 더운 기후를 지니고 있으면서 섬으로 이루어져 유목민의 영향을 받지 않아 메이지 유신 시대까지 고하를 불문하고 좌식 생활이 쭉 유지됩니다. 다다미라 불리는 볏짚 바닥재가 등장하기도 했는데 통풍이 잘 되어 고온다습한 기후에서 시원하게 좌식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글을 마치며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이유가 아닌 근본적인 통찰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주제에서 가장 흔하게 퍼져 있는 정보 중 하나인 '한국은 온돌 때문에 좌식을 한다'가 있습니다. 하지만 온돌은 좌식 생활에 결정적인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온돌이 대중화되기 이전에도 한국인들은 좌식 생활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자료를 통해 유추해 본다면 신발을 신고 벗는 문화는 해당 지역의 환경이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온난한 기후의 나라들은 신발을 신고 들어가고 덥거나 추운 나라들은 벗고 생활합니다.

 

사실상 현대 사회에서는 실내에 신발을 신고 들어갈 이유를 찾는게 더 어렵습니다.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문화에 침략을 받아 영향을 받은 나라들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문화권에서 실내에서 신발을 벗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실내에서 신발을 신는 나라들도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슬리퍼를 신거나 벗는 문화로 전환되고 있으며 단순히 익숙하기 때문에 지켜지고 있는 문화라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모든 국가들이 실내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문화가 정착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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