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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vate Story/Talk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 전시 관람

by 늘상의 하루 2023. 2. 20.

요한 칼 아우에르바흐 '마리아 크리스티나 여대공의 약혼 축하연' (1773) - 국립중앙박물관 합스부르크 전시에서 촬영

저는 역사의 이야기가 담긴 전시물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림이 되었든 조각이 되었든, 옛 사람들이 일상에 쓰이던 도구가 되었든 그 용도와 얽힌 이야기를 보고 당대의 모습을 상상하곤 합니다.

 

이번에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빈 미술사 박물관과 협력하여 합스부르크 가문을 테마로 한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감사하게도 복제본이 아닌 진품을 전시했으며 합스부르크라 불리는 유럽사를 장식한 하나의 챕터를 가까운 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훌륭한 경험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합스부르크는 결혼 동맹을 바탕으로 600년의 세월 동안 유럽을 지배한 가문으로 오스트리아에서 시작하여 신성 로마 제국까지 영향력을 행사한 명가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유럽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만큼 합스부르크 가문의 예술 작품들은 국경을 넘나들고 지금까지 내려오며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정도로 관객들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선물하는 귀중한 사료입니다.

 

당장 달려갔습니다.

 

티켓팅이 어려워 평일에 예약 없이 현장 발권으로 다녀왔으며 전시를 관람하면서 기대 이상으로 많은 수의 전시물들을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1583년 루카스 판 발켄보르흐 작 마티아스의 초상

전시에 처음 입장하면 거대한 마티아스의 초상이 관람객들을 마주합니다.

 

마티아스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2세 카를 5세의 딸 마리아 사이에서 나온 자식으로 1557년 2월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후 루돌프 2세에게 고향 오스트리아 총독위를 임명받고 이후 정치력을 발휘하여 헝가리인들과 협정을 맺어 오스만 제국과 평화 조약을 체결하며 자신의 형이자 신성 로마의 황제인 루돌프 2세를 압박해 헝가리의 왕이자, 모라바 변경백, 오스트리아 대공위를 넘겨받았습니다.

 

루돌프 2세는 급격히 커지는 마티아스를 견제했으나 이는 실패로 돌아가고 보헤미아의 왕으로 추대되었으며 1612년 루돌프 2세의 사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선출되게 됩니다.

 

그는 황제가 되기까지 열정적인 생애를 보냈으나 제위 직후에는 내부의 종교 갈등과 마찰, 건강 악화로 점점 무력해지다가 1619년 사망하고 그의 사촌 페르디난트 2세에게 권력을 넘겨주게 됩니다.

 

그의 초상이 그려진 작품은 시작부터 강렬하게 시선을 잡아끕니다. 길쭉한 얼굴과 부리부리한 눈, 잘생긴 코, 그리고 화려한 의복의 자수까지...

 

가까이서 살펴볼수록 느껴지는 화가의 섬세한 표현은 예술에 무지한 제가 보더라도 이는 작품이라는 경외감이 들게 만드는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루돌프 2세의 리본 장식 갑옷 - 안톤 페렌하우저 작 1571년 경

연철과 황동, 직물과 가죽을 사용하여 만들었으며 리본을 표현한 금색 문양이 인상적인 갑옷으로 막시밀리안 2세가 자신의 동생 카를 2세의 혼인식 기념 행사에 참여하는 자신의 아들 루돌프 2세를 위해 주문한 것으로 추측되는 갑옷입니다.

 

마상에서 착용할 수 있도록 강철 치마를 배제하고 사바톤 뒤꿈치에 박차를 달았습니다. 또한 마상에서 안정적으로 랜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우측 흉부에 랜스걸이를 부착했으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금으로 정교한 문양을 새겨 넣었습니다.

 

남성성을 상징하며 낭심을 보호하는 코드피스 또한 알차게 들어가 있어 갑옷은 패션이라는 해당 전시실의 테마에 걸맞는 당대 최신 유행 갑옷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루돌프 2세, 페르디난트 2세, 펠리페 4세의 초상

루돌프 2세는 매우 무능하고 심약하고 정치에 관심이 없는 황제였습니다. 합스부르크 왕가 사람들은 마티아스에게 왕권을 넘기라고 그를 압박하고 몰아낼 정도였고 말년에는 프라하 성에 연금되어 59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을 거부하고 예술과 과학에 열정을 쏟았으며 루돌프 2세가 수집한 예술품들은 빈 미술사 박물관의 모태가 되어 지금의 전시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많은 사료들을 남겨 주었습니다.

 

이러한 루돌프 2세의 노력을 바탕으로 이후 페르디난트 2세는 종교에 대한 온건한 입장을 통해, 다양한 종파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도왔으며 이들의 경쟁으로 예술이 발달하면서 르네상스 인본주의가 티롤에 유입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합스부르크 가문은 자신들의 권력을 확장하기 위해 결혼을 정치적으로 사용했습니다.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를 통해 빠르게 세를 확장하고 뿌리내렸으며 안정적인 유지를 위해 근친 결혼 또한 서슴없이 시행했습니다. 그 때문에 합스부르크 가문의 초상화를 보면 시대를 넘어갈수록 유전병의 흔적이 모습을 비추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근친 결혼은 스페인에 뿌리내린 합스부르크 왕가가 유난히 심했으며 펠리페 4세는 유전병으로 인해 주걱턱이 굉장히 강조되어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이야기들이 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 재미를 한껏 끌어올려주는 요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암브라스 성 구조

암브라스 성은 페르디난트 2세가 아내를 위해 결혼 선물로 축조한 성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적, 기술적 정수가 담겨 있으며 이후 오스트리아 최초의 박물관이 되어 중세의 장비와 미술품들을 전시해 둔 곳입니다.

 

성을 표현하는데 있어 구조에 대한 좋은 사료가 되어 주기 때문에 놓칠 수 없었습니다.

A : 대형 홀 / B : 정원 옆의 집 / C : 여름의 집 / D : 양조장 / E : 곡식 창고 / F : 도서관 / G: 마구간 / H : 예술의 방
I : 영웅들의 무기고 / K : 고대 로마관 / L : 시동들의 숙소 / M : 회랑 / N : 정원 / O : 궁전 주방

 

마리아 테레지아, 나폴레옹, 프란츠 요제프의 초상

그림을 보면 시대상을 살펴보고 화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으로 마리아 테레지아의 그림이 있습니다. 그녀는 1740년 아버지 카를 6세의 사망 이후 오스트리아, 헝가리, 보헤미아의 왕위를 차례대로 계승하게 됩니다.

 

이러한 그녀의 권력은 그림 속에 드러나는데, 탁자 위에 올려둔 헝가리의 성 슈테판 왕관, 보헤미아의 성 바츨라프 왕관, 오스트리아의 대공관으로 표현됩니다.

 

다만 여성은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황제관은 넣을 수 없었으며 그의 남편인 프란츠 슈테판이 1745년 황제로 즉위하게 됩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전시물들이 준비되어 있으며 화면 너머로만 보던 역사적인 작품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귀중한 기회였습니다.

 

정적인 이미지와 직접 보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경험을 선사합니다.

 

내가 원하는 포인트를 내가 원하는 각도로 살펴보고,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공간과 전시물이 주는 무드를 느끼고 있다 보면 당대의 사상과 환경을 알 수 있고 이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보다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상 이렇게 표현했지만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전시물의 크기와 디테일에서 참 많은 차이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사진으로는 측량하기 어려운 경험이기에 역사에 관심이 많고 기회가 된다면 이번 2월이 지나기 전에 꼭 한번 방문하시기를 권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