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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vate Story/Talk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아즈텍 문명 - 전시 관람

by 늘상의 하루 2022. 7. 11.

주말에 나들이 삼아 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아즈텍 문명은 주변에서 접하기도 어렵고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정보를 찾아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마침 국립박물관에서 아즈텍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중심에 있는 대사원 '템플로 마요르' 유적지에서 발굴한 유물 전시를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들어 기회다 싶어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아즈텍 제국에 대한 글을 정리하여 작성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만든 식인 제국과 코르테스의 방문을 겉핥기식으로 간결하게 정리한 내용이었습니다.

 

아즈텍 제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제가 작성한 글처럼 식인 대제국을 이룩한 거대한 종교 국가이며 또 다른 하나는 전자의 이미지가 코르테스의 통치 정당화를 위한 악질적인 폄하와 조작이라는 것입니다.

 

제 경우에는 전자의 시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종교적, 통치적 이유로 코르테스가 파괴하고자 노력했던 아즈텍 제국의 촘판틀리와 제단, 상징물들을 고려했음에도 지금까지 남아있는 그 숫자를 헤아려 본다면 제물로 희생된 숫자가 어마어마함을 추론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에 대해 비난하거나 멸시할 생각은 없습니다.

 

당시 메소아메리카 문화권에서 식인과 인신공양은 도덕적 논쟁거리가 아닌 당연한 풍습이었고, 아즈텍의 종교 문화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원시 신앙의 거대화로 이루어진 하나의 통치 시스템이었기 때문입니다.

 

긍정적인 점도 있습니다. 아즈텍 문명은 구휼과 복지 정책을 지니고 있었으며 장애인들 또한 같은 태양의 자식이라 하여 전문적으로 보살폈습니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장애인을 신의 저주를 받은 이들, 괴물로 표현한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허나 브레이크 없는 문화의 방향성으로 만들어진 꽃 전쟁, 인간 요리법, 신체로 만든 상징물들 역시 외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의할 점은 현대인의 시각으로 시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닌, 당대인의 시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후자의 시각을 지니고 있기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아즈텍의 문화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풍요의 신 찰치우틀리쿠에 화로와 조각/ 어린 옥수수의 신 실로넨 조각

아즈텍 문명은 석기를 주력으로 사용했으며 이 때문에 사람들은 아즈텍 제국이 아주 먼 옛날에 존재했던 고대 이집트와 같은 시기에 발흥했다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즈텍은 의외로 멀지 않은 시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려 말(1248)부터 조선 초기(1521)까지 존재했으며,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은 인구 20만이 넘어가는 초거대 폴리스를 구성하고 있었고, 천문학, 수학, 의학 등 다양한 학문에서 수준 높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유럽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체계적으로 잡혀 있던 아즈텍의 의학 코덱스는 유럽인들이 가장 눈독을 들이던 보물 중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미국 남부부터 남아메리카 북부까지 수많은 도시 국가들과 교류하며 거대한 시장을 만들었습니다. 상수도와 하수도를 분리하여 청결한 위생을 유지하였고, 의무적으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전문적인 지식들을 가르쳤습니다.

 

세습과 비세습이 섞인 신분제로 인하여 이민족이라도 아즈텍에 귀화하여 노력한다면 귀족 계급이 될 수 있었으며, 수많은 신들을 모시며 종교와 삶이 통일된 세상 속에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들의 국가는 신정일치로 종교가 모든 것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들의 모든 축제와 기념은 테노치티틀란의 중심에 있던 대신전 '템플로 마요르'에서 벌어졌습니다.

 

단순히 석기(흑요석)를 주로 사용한 것을 제외한다면 창작물에 가끔 언급되는 스톤펑크 세계관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메소아메리카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흑요석과 화폐처럼 사용했던 구리판, 해골 모양으로 만든 점토 술잔

아즈텍 제국은 광범위한 영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테노치티틀란을 중심으로 복잡한 무역 시스템을 이룩했습니다.

 

메소아메리카에는 가축화 가능한 대형동물이 없었기에 수레를 끌 짐승도 없었고 때문에 대다수의 물류는 인간을 통해 나르거나 해안이나 강줄기를 따라 카누를 통한 수운으로 운반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즈텍인들에게 있어 카누는 자동차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들에게는 청동기와 철기를 제련할 야금 기술이 있었지만 그 수가 적고 코르테스가 당도하기 전까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해 주로 흑요석이 중심이 된 석기를 사용했습니다.

 

이들과 대립각을 세우던 이웃 국가 타라스칸 제국에서는 집중적으로 철기를 발전시켰지만, 아즈텍의 멸망을 본 탕가수안 2세는 그들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전쟁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흑요석 대검 마쿠아후이틀과 흑요석 칼 텍파틀

아즈텍 인들의 무기는 돌로 만들어졌지만 그 위력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흑요석의 특성상 쪼개진 단면은 메스처럼 날카로웠고, 코르테스와의 전투에서 아즈텍 전사가 마쿠아후이틀을 휘둘러 말의 목을 단숨에 베어낸 기록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아즈텍 제국과 인근 도시 국가들은 정기적으로 꽃 전쟁이라는 전투를 통해, 패배한 부족을 노예로 사로잡아 종교 의례의 희생 제물로 바치는 일을 반복해 왔습니다.

 

마쿠아후이틀은 아즈텍 전사들의 주력 무기입니다.

 

거대한 나무 몽둥이를 조각한 다음 양측에 홈을 파내 만들어진 흑요석을 아교로 붙여 만든 것으로 둔기와 도검을 자유자재로 사용 가능하여 꽃 전쟁에 최적화된 무기로 적을 제압하고 포로로 삼기에 용이했습니다.

 

텍파틀은 제례용 검으로서 희생 제물의 가슴을 깔끔하게 절개하여 심장을 꺼내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이렇게 희생된 제물의 머리는 잘 발골되어 해골탑 촘판틀리의 건축 자재로 사용되었습니다.

 


비의 신 틀랄록을 묘사한 제단 '착몰' / 심장을 담는 그릇 '쿠아우시칼리'  /  희생 제물을 담는 제단 / 다리뼈로 만든 피리

아즈텍은 신정일치의 종교 국가였던 만큼 그들의 신앙과 관련된 유물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생활상 속에서도 신들의 모습을 표현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으며 사람의 육신을 사용하여 여러 가지 종교적 상징물을 만드는 것을 시도했습니다.

 

사람 가죽으로 만든 제례용 의복, 북, 책은 물론 뼈로 만든 악기와 장식물들, 상징물들을 사료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태양이 힘을 잃으면 세상이 멸망한다 믿었고, 태양에게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충분한 희생 제물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박물관의 주제인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이라는 표어 또한 이들의 태양 신앙에 기반합니다. 

 

인접한 적들을 노예로 삼아 그들을 태양신에게 바치는 것으로 태양에 힘을 불어넣고 세상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찌 보면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는 그들의 사명감이 아니었던가 싶기도 하는 생각입니다.

 

개인적인 관점이지만 이들의 태양 집착은 소빙하기를 거쳐오며 생존에 대한 갈망이 종교와 결합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기도 합니다.

 


템플로 마요르에 봉헌된 전사의 해골(좌측)과 해골탑 촘판틀리(우측)에 장식되었던 적군의 해골, 유적을 기반으로 재구성한 촘판틀리

개인적인 관점에서 전시를 관람하여 이들의 유물들을 살펴보며 느낀 점들이 있습니다.

 

어떤 유물들은 굉장히 특이하고 기묘한 조각과 표현들을 지니고 있는데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이것들이 인신공양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어쩌면 박물관이 추구하는 침략자의 시선이 아닌 비교적 온건하고 중립적인 시선의 아즈텍 제국을 보여주기 위한 테마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저와 다른 관점을 테마로 열린 전시를 보며 좋은 경험을 하고 지나갔습니다.

 

아즈텍식 해골 눈사람 만들기는지금 다시봐도 충격적인 센스가 아닌가 싶습니다.